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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은 못하지만............ (펌)
작성자홍선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0 조회수714 추천수2 반대(0) 신고
잘은 못하지만...


잘은 못하지만... 부업(副業)을 하는 연예인들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에서 웨딩사업을 하는 박수홍 씨를 인터뷰할 때, ‘잘은 못하지만... 방송이 저에겐 잘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할 때 나는 반사적으로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에 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그 한 마디로 인하여 갑자기 호감(好感)이 가면서 새삼 겸손과 배려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처음에는 호감을 가졌는데 갈수록 실망(失望)되는 사람이 있고, 첫 만남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만날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아마도 선입견을 갖거나, 아무 이유 없이 싫어했던 사람이 분명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아무 의식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오는 경우일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간에 계속 만나도 위로는커녕 피해만 주는 비호감적인 사람과 함께, 가끔 만나지만 언제나 큰 힘이 되는 호감적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은 인상(印象)이 좋은 사람을 말할 때가 많다. 인상은 얼굴에서 나타나는 모습이기에 잘 생긴 사람이 더 호감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지내다보면 얼굴보다는 웃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간다. 다음으로 대화(對話)를 통해 호감은 더 구체화 된다. 간간한 미소 속에 상대방의 표정을 주시하며 적절하게 대꾸와 칭찬까지 해주면 친밀도는 극대화를 이룬다. 결국 호감(好感)이 간다는 것은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해주는 겸손한 사람을 말한다. 누구나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욕심으로 인해 알면서도 무시하고 오히려 상처 주는 일이 많기에 조금만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해 줄 때 누구라도 호감을 갖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호감의 가장 기본은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 곧 상대방(相對方)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예전에 눈높이학습이 교육시장에서 크게 히트 친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공감하려면 먼저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려면 먼저 상대를 바로 이해(理解) 해야 한다. 사람은 다른 어떤 조건보다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이해는 작은 일 같지만 감동이 있는 것은 그 안에는 큰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는 잘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된 것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할 때, 심리적으로도 후련하지만 더불어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고 존경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훈계나 꾸짖음, 채찍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도 그 자리에 서 볼 때 공감대가 이루어지며 호감(好感)은 물론 자연스럽게 사랑까지 싹트게 된다. 그러므로 눈높이로서의 이해는 상대를 인정(認定)하고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해 주는 단계다. 누구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해 준다면 공감대는 물론이요 상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에,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미성숙한 사람은 어린아이같이 모든 기준이 항상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 행복도 중요하지만 조금만 멀리 내다보고 상대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공감대가 이루어지며 상대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 입장에서 상대 눈높이에 맞춘 후에는 자신에게 솔직해야 호감은 아름다운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박수홍 씨는 준비된 신랑(新郞)감 1위로 한편 미혼여성에게 질문한 최고의 신랑감으로도 꼽혔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론 외모와 인기가 큰 요인이 되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에 대한 첫 인상은 이미 착실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눈높이 맞추는 일이 상대를 위한 기술적인 배려라면, 진실(眞實)은 오직 자신을 위한 배려다. 그것은 이기적인 자아를 위한 배려가 아닌 진실을 담기 위해 자기 그릇을 비워야하는 결코 쉽지 않는 수행(修行)과 같은 과정이다. 인생이 단거리라면 외적인 배려를 통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지만, 장거리 인생에서는 남을 배려하기 전에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고는 어떠한 기쁨도 만족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자신 안에 쌓여있는 분노와 슬픔, 미움과 욕망의 쓰레기들이 참된 평안을 막고 막연한 내일을 향해 뛰어가는 분주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무슨 일이 터지면서 바벨탑처럼 한 순간(瞬間)에 무너진 후에 가서야 어리석은 자신을 탓하며 가슴을 친다. 내일(Tomorrow)처럼 허무맹랑한 녀석도 없다. 오늘, 내가 거짓의 올무에 묶여있으면서 과연 내일 그 꿈들이 현실화될까. 그러므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받아주지 않아도 좋다. 용서 받지 못해도 괜찮다. 자신에게 솔직하면 남과 상관없이 감사한 마음이 넘쳐흐르며, 피곤한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내 영혼을 뒤 흔들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이 겉과 속이 똑 같을 것 같이 느껴지기에 호감이 가고 함께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세 번째는 서로 통(通)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게 느끼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점이다. 톨스토이 부인은 32년 통틀어 남편이 친절하게 물 한 잔 건네주거나,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아이들 침대 맡에서 단 5분이라도 있어 준 적이 없었다고 회고(回顧)했다. 그래서 서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 실컷 이야기를 해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사람이 많은 세상인지라 부부지간에 서로 말이 통하면 미스터리에 속한다고까지 말할까. 여기서 서로 통(通)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서로 교감(交感)할 수 있다는 것이요,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단 말인가. 바벨탑 이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세상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삶과 죽음이 교차(交差)하듯이 서로 다른 인격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통한다거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통하는 사람끼리 모여 제한된 범위의 소속감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이 사회는 또 다른 차원의 격차만 생겨난다. 차라리 서로 다른 너와 나라는 특성(特性)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섬기므로 곧 자신을 오픈하고 자신의 정보까지 주므로 안정된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삼성(Samsung)에서 I.D나 정보를 공유하는 웹2.0시스템을 하반기부터 가동하겠다고 했다. 임직원부터 서로 통(通)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통하면 전 사원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만큼 회사 자산(資産)은 늘어나게 되어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존재가 누군가와 통(通)하려면 최소한 개인적인 자아를 내려놓고, 더 넓은 공동체 속에서 자아를 찾으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여, ‘잘은 못하지만...’ 박수홍 씨 말대로 저는 정말로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 솔직하고 더 착실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저와 잘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짜증내지 말고, 잘 통하는 사람이 되도록 더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최소한(最小限), 겉으로 보나 사귀어 보나 똑 같은 사람이 되어, 당신께 호감(好感)갖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2007년 3월 18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햇볕같은이야기 이미지웰 서락샘 해와달 설악디카(최문길) 출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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