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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겉치레 위해 사는 사람 . . . . . . [주상배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9 조회수1,124 추천수14 반대(0) 신고

 

                     -[요셉성인과 어린 예수님]-

 

 

내가 잘 아는 미국 신부님이 계셨다.

 

그분은 내 어머님 임종 때에 병자성사를 베풀어 주셔서

선종케 하셨을 뿐아니라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시는

엄격한 수도신부님이시기에

깊이 존경하였고 그분 또한 나를 퍽 아껴 주셨다.

 

그런데 몇 년 전 시골에서 새를 기르시며

고독을 벗삼아 홀로 지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찾아 뵙고

좋은 말씀도 듣고 인사도 드릴 겸 하여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찾아갔다.

 

마침 출타 중이셨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마당을 둘러보니

고물 오토바이가 고장이 난 듯 쳐박혀(?) 있었다.

 

그래서 몇 군데 정성들여 손질을 해 시운전 끝에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내 손은 시커멓게 되었지만 좋은 일 하나 해드렸다 싶어

"땡큐!" 하며 칭찬해 주실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흐뭇해

하고 있는데 마침 신부님이 돌아오셨다.

 

반가워하시면서 악수를 청하시기에

내 시커먼 손을 보여드리며 자랑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오토바이를 고치느라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이 일그러지시면서 몹시 언짢아 하셨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내 오토바이 만지는 것 안좋아합니다."

 

나는 가져온 선물도 못 드리고 멀수룩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 나는 이분과는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오히려 서운한 마음이 더 들었다.

 

 

나중에 신부님도 미안해 하시면서,

미국 사람들은 절대로 빌려 주지 않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칫솔, 부인, 그리고 기계라고 하시면서 농담 겸

당신네 생활방식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그 때의 그분의 감정을 얼마 전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가까운 사이면 성의를 보아

좀 너그럽게 대해 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그분의 심정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평소 나를 잘 따르던 청년이 있는데,

그가 나를 칭찬해주기 때문에 나는 그에겐 늘 약하다.

 

그가

"신부님은 참 너그럽고 인자한 분이예요." 할 때

"아이구 뭘!" 하면서도 내심 즐거워하곤 하였다.

 

어느 날,

그가 내가 애지중지하는 카메라를 좀 빌려달라는 것이다.

난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 하고 그만 빌려주고 말았다.

 

그리고

'망가뜨리면 어떡하나... 혹시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퍽 불안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고장을 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순간 굉장히 불쾌했지만

화를 내거나 언짢은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옛날 일이 번뜩 떠올랐을 뿐 아니라,

바로 그가 늘 나를 보고 '너그러운 신부님'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침을 꿀떡 삼키고 이렇게 말했다.

 

"..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건가. 괜찮아요.

 이 다음에 혹시 또 필요하면 서슴없이 얘기해요."

 

사실 속은 쓰리면서도

겉으로는 빌려 주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처럼...

아니,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성인군자처럼 말했다.

 

", 신부님 그렇게 하지요."

 

그 친구는 남의 속도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게 아닌가?

 

'예끼! 이 염치없는 사람아, 아니, 그렇게도 눈치 코치가 없니...,'

 

이말이 목구멍까지 와닿는 걸 침을 한 번 더 꿀꺽 삼켜 참았다.

미운 마음까지 들었으나 내색을 하지 않으려니

더 힘들고 짜증스러웠다.

 

그가 가고 난 다음,

속상한 마음을 아무 영문도 모르는 주방 언니한테

반찬 트집을 잡아 ! 풀어 버렸다.

 

며칠 후,

주방 언니가

'밖에서는 아주 인자하시고 좋으시다는 신부님이 안에선 왜 그렇게

짜증을 부리시는지 영 알 수가 없다' 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그말을 듣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 이해해 줄 수 있는 가까운 사이 아니니...,'

 

그래 놓곤,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오라,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 있는 사이란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로구나!

 그러나 듣는 이는 괴롭겠구나...,'

 

그 순간,

미국 신부님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진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구나.'

하는 자성의 소리를 들었다.

 

보이기 위한 삶,

실속 없이 겉치레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은

그 자신 얼마나 힘들며...

 

또 그와 더불어 일생을 살아가는 이는

또 얼마나 더 괴로울까!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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