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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겨자씨 보셨나요?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9 조회수565 추천수4 반대(0) 신고

                 

                       겨자씨 보셨나요?




아마 겨자씨를 본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겨자씨를 딱 한번 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6년 12월 홍콩/마카오/신천/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가톨릭문우회/현 한국가톨릭문인회>의 해외 피정 행사에 참가한 덕이었지요.

그 행사에 함께 하신, 예나 지금이나 가톨릭문인회의 지도 신부로 수고하시는 조광호 신부(인천가톨릭대학 종교미술학부 교수)님이 30여 명의 신자 문인들에게 특별한 선물 하나씩을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작은 투명 비닐 주머니였지요.

정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비닐 주머니여서 의아한 눈으로 조 신부님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때 조 신부님이 말하더군요.

"비닐 주머니 안을 잘 보십시오. 아주 작은 뭔가가 보일 겁니다. 투명 비닐이니까 그냥 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주의 깊게 잘 보셔야 합니다."

"무슨 씨 같은 게 있는데요."
"씨? 이게 과연 식물의 씨일까?"
"오라, 이게 바로 겨자씨로구나!"

30여 명의 신자 문인들 중에서 일찍이 겨자씨를 본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대개는 겨자씨를 처음 본 나머지 하나같이 탄성을 발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을 수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나면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된다니, 너무 신기해."

무엇과 비교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겨자씨는 작았습니다. 시력 약한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것 같고, 내가 예전에 본 적이 있는 파리똥보다도 더 작은 것 같더군요.

나는 투명 비닐 주머니에 담긴 그 겨자씨 한 알을 잘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겨자씨를 잘 간직한다고 했지만, 세월의 어느 굽이에서 그걸 잃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겨자씨는 잃었지만 그것을 보았던 기억은 명료하게 남아 있습니다. 가끔 성경에서 겨자씨를 듣게 되면 그때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겨자씨의 실물을 보았던 기억을 가지고 성서의 겨자씨를 접하게 되면 다시금 새롭게 실감을 얻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파리똥보다도 작은 겨자씨 안에 엄청난 생명의 신비가 담겨 있다는 사실과 "하느님의 나라는 이 겨자씨와 같다"고 하신 성서 말씀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는 현재 겨자씨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으로, 또는 겨자씨 같은 작고 미약한 존재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안에는 하느님의 엄청난 구원 계획과 은총이 자리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겨자씨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했으니 나는 겨자씨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내 가슴에 심겨진 믿음의 겨자씨를 잘 간직하고 가꾸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현세에서는 내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끝까지 겨자씨로 존재하고 또 겨자씨를 안고 간다면, 저 내세에서는 내 작은 겨자씨가 엄청난 크기의 나무로 변모하는 '은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현세에서의 내 모습과 믿음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더라도, 믿음은 곧 생명이기에, 작은 겨자씨가 엄청난 크기의 나무로 변모하듯 나 역시 저 내세에서는 그렇게 변모하리라는 생각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생명의 신비가 담겨 있는 작은 겨자씨에서 내세에 대한 희망을 더욱 크게 얻는 것이지요.


※이 글은 대전교구 태안성당 2007년 3월 18일(사순 제4주일)치 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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