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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째 가는 계명'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5 조회수539 추천수3 반대(0) 신고

첫째 가는 계명(마르12,28-34)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가는 계명인가? 도대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즉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요, 숭배하고 우러르는 것이요, 봉사하는 것이다.


첫째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왜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나를 창조하실 때 "우리를 닮은 인간을 만들자"하시고 나를 만드셨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나의 존재는 "너는 나의 귀염둥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사랑이다."라고 하실 만큼 사랑스런 존재이다.


하느님은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16)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신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도리이다. "숨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미하라"(시편150,6)고 노래하였듯이 숨쉬는 모든 것들이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러르는 것이다. 왜 하느님을 숭배하고 우러러야 하는가? 하느님이 하신 일이 놀라워서이다. 그분이 하신 업적이 너무나 놀라워서이다.

"야훼님 기리리라, 이 마음 다하여, 의인들 모임에서 큰 모임에서. 야훼님 하신 일들 하도 크시어, 그 좋아하는 이들 익혀야 하리로다. 두렵고 눈부셔라 당신의 일들, 그 의로우심은 영원하도다."(시편110,1-3)

 

"주님을 찬미하라, 그의 성소 안에서 우람한 그의 하늘에서 주님을 찬미하라. 그 하신 일 놀라워라 주님을  찬미하라, 그지없이 크오셔라, 주님을 찬미하라 나팔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미하라."(시편150 1-3) 즉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나를 위해 이루워 놓으신 위대하신 업적을 우러르며 경배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 원수들 무색케 하시고자, 불신자 복수자들 꺾으시고자 어린이 젖먹이들 그 입에서 마저, 어엿한 찬송을 마련하셨나이다.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와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시편 8)라고 찬미하였다.

 

그러나 정말 하느님의 위대하신 업적은 그리고 놀라우신 일은 나를 구원하시는 일이다. 하느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 그 모든 일은 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것, 이것보다 더 놀라우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창조주께서 하찮은 피조물인 나의 구원을 위해 당신 친히 목숨을 바치셨다는 것이야말로 엎드려 경배 드리고 우러러 뵈올 일이다.

 

마리아는 이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너무나 잘 알고 감탄하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그분께서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을 알게 되면 하느님을 경배 드리지 않을 수 없고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요한 4,22-2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셋째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것이다. 봉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봉사하다"라는 말은 비위를 맞힌다는 것이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종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요, 하느님이 하라는 것을 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즉 종으로서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인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봉사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봉사는 섬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서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종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이시면 서도 인간을 섬기기 위해 오셨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즉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은 항상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나를 행복에로 인도해주신다. 따라서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만 가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 나보다 더 내가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분,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 나보다 더 나를 위해서 희생하시는 분, 그분이 내가 믿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을 섬기지 않고 누구를 섬기겠는가? 그분의 뜻을 따라 가지 않고 누구를 따라 가겠는가?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니 내가 해야하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요, 그분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는 것이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고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즉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결국 산다는 것은 오직 한가지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사랑하다가 죽는 것, 그것이 인생이요, 행복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이요, 삶의 목적이다.

 

이렇게 내가 나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웃도 결국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이며 그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이다. 내 이웃이 곧 나의 양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잘 돌보아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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