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힘 겨루기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5 조회수911 추천수16 반대(0) 신고


루카; 11,14-23


예전에 어떤 멋진 교수 신부님이 계셨답니다.
항상 열려있는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던
인간미 넘치는 분이셨답니다.

신학생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으시던 그분이
어떤 날, 아무 말씀도 없이 강의를 그만두시고 사라지셨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몸담고 계시던 수도회에서
그분에 관한 추문이 계속 흘러나왔답니다.

고아들을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딸처럼 돌보던 여학생 한명에게 임신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시설장이었던 신부님이 돈을 횡령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은 배신감에 몸을 떨었고,
실망과 증오로 그분의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답니다.

..................


세월이 많이 흘러 
그분을 무척 따랐던 신학생 한분이 서품을 받고도 한참 후에,
먼 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어느 날, 옛 스승이신 그분이 그나라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답니다.
놀랍게도 아주 작은 시골의 한 수도원에서 아직도 수사신부님으로 계시더랍니다.

몇날을 망설이다 그분을 찾아갔답니다.
"내가 학교를 나가고  많이 실망들 했지?"
"아마도 몹시들 미워했을거야."

늙고 초췌해진 신부님을 뵙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물으셨답니다.

"도대체 그 소문이 정말인가요?"
조용히 미소지으며 노 신부님은 진실을 말씀하셨답니다.

어릴 때부터 딸처럼 보살펴 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시설에서 나갔는데,
하루는 임신을 했다고 찾아와 형편이 어려우니 돈을 달라고 사정하더랍니다.
수도자가 무슨 돈이 있냐고 하니까,
돈을 주지 않으면 신부님의 아기라고 소문을 낼 거라고 하더랍니다.

신부님은 그 아이의 부당한 요구를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누명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뱃속의 아이 아버지가 바로 그 수도원의 한 젊은 수사라는 것을 알고는
아무런 해명도, 적극적인 대처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수도원을 생각하고,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몇날 몇일 고민하던 차에,
차라리 당신 혼자 멀리 멀리 떠나,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하였답니다.

그일의 당사자인 젊은 수사는 나중에 스스로 수도원을 떠났고,
그 둘의 소식은 그후로는 모른다면서.
"어디에선가 잘 살아야 될텐데" 하시며 담담히 차를 따라주시더랍니다.


오랜 세월, 
이중인격자, 배신자, 악마의 괴수라고 여겼던 그분이
젊은 후배 수사의 거짓과 죄악을 다 덮어쓰고
딸처럼 보살펴주던 아이의 배신을 다 참아받고 
낯선 이국땅의 시골 한구석에서 밭갈고 거름치며 
입 꾹 다물고 외롭게 사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호기심에 둘러싸인 사람들 앞에
낱낱이 사실을 밝혔다면,
젊은 수사와 여자 아이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더 깊은 악, 거짓과 음모 속으로 빠져들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도 않고 
진창에서의 더러운 공방은 끝까지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관련된 그 두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런 추문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도 끝이 안 났을지 모릅니다.

대개 그런 재미난(?) 일을 구경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 
더 더러운 추문이 계속 나오길 은근히 바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 복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명백한 선행을 보고도
악마의 괴수, 베엘제블의 하수인이라며 비방하는가하면.
억울하면, 하느님의 일이라는 증거를 보이라며 종용합니다.

예수님은 기다, 아니다 직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에둘러 물으십니다.


만일 내가 악마의 힘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비방을 하고 있는 너는 도대체 누구의 힘을 빌려 일하는 것이냐?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봐서, 
지금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모함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에는 기적시술자들이 더러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루카복음에는 마르코나 마태오와는 달리 그들이 율법학자, 바리사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대개 같은 부문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능력있는 사람들을 비방하지.
전혀 다른 부문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비방을 일삼고, 모함을 일삼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잘 아는, 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불안해합니다.
그런 사람이 생기면 그를 제거하고 자기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능력이 모자라면 사람들을 부추기고 은근히 선동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


하느님의 일이라는 표징을 보이라는 것은 더 큰 힘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오늘 복음에는 유난히 힘을 겨루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마치, 노 신부님이 진실을 백일하에 밝혀내어, 
자신에게 악을 행한 두 사람을 전리품으로 삼지 않으신 것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신부님이 벙어리처럼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말을 할 줄 몰라서도 아니고, 증거가 없어서도 아니고,
오직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원치않는 힘겨루기 시합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시곤 
에둘러 자신들의 내부를 살펴보라 충고 하시는 예수님.

오늘 노 신부님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것!


해명보다 더 큰 힘은 침묵!
증거를 보이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인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더 큰 힘은 관용!
이것을 가능케 하는 더 큰 힘은 사랑!!! 




Beetoven Moonlight sonata op.27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