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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5 조회수82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7년 3월 15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Whoever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whoever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Lk.11,23)
제1독서 예레미야 7,23-28
복음 루카 11,14-23
 
어떤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 강의실로 들어왔습니다. 인사를 한 뒤 강의를 시작하는데 학생들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쎄 교수님의 바지 남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남대문 안에 보이는 속옷 색깔이 새빨간 색이라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큰 소리로 웃고 싶었지만, 차마 교수님을 정면으로 보고서는 웃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칠판에 글씨를 쓰면 웃고, 다시 학생 쪽을 바라보면 웃는 것을 억지로 멈추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몇 차례 지속이 되자,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떤 놈이야? 웃는 놈보다 웃기는 놈이 더 나쁜 놈이야~”

여기서 웃기는 놈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교수님 자신이지요. 자신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나쁜 놈이라고 지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가 우리들의 삶 안에서는 너무나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실수하고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하기만 했던 내 자신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단죄를 반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로써, 마귀 들린 사람들까지 치유해주시는 엄청난 일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두 개의 반응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기적을 전대미문의 놀라운 일이라면서 경탄하는 의견과, 이를 반대하면서 예수님께서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서 경탄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면서 오히려 마귀의 하수인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 비판하는데 집중하는 우리들의 행동들과 이기심이 예수님을 마귀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귀도 외적으로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귀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기적과 마귀의 기적을 평가하는 기준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가져오는지, 아니면 공동체의 일치를 파괴하는지에 따라서 하느님의 기적과 마귀의 기적으로 나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말과 행동은 어느 편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말과 행동을 하도록 합시다.



버선 한 켤레의 온정('좋은 생각' 중에서)

조선 후기의 야담집인 '청구야담'에 있는 이야기다. 한 아낙이 젊어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과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바위 밑에서 항아리를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은이 가득 담긴 게 아닌가. 아낙은 누가 볼세라 얼른 뚜껑을 닫고 바위로 그것을 덮었다.

그러고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고 온갖 고생 속에 자식을 키웠다. 두 아들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학업에 힘썼고, 차례로 벼슬길에 올랐다. 아들들이 결혼해 손자손녀가 줄줄이 태어났다. 아낙의 말년은 평온하기만 했다.

하루는 그녀가 아들, 며느리에게 바위 밑에 묻어 두었던 은 항아리 이야기를 하고 그곳을 가져오게 했다.

"내가 30년 전에 이 항아리를 얻었지만 그 자리에 도로 묻어 버렸다. 갑자기 생긴 재물 때문에 어린 너희들이 방자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부는 커녕 끝내 사람 구실도 못할 게 아니냐. 이제는 너희에게 이 재물이 있더라도 사치하고 교만할 염려가 없겠기에 주는 것이다. 좋은 곳에 쓰도록 하여라."

두 아들 내외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추운 사람에게 옷가지를 주었다. 또한 궁핍한 친척들의 혼인과 장례를 도왔다. 아낙 역시 겨울이 되면 손수 버선을 수십 켤레 지어 밖으로 나가서 나눠 주었다. 알고 보니 버선을 신지 못한 거지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은 항아리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았던 아낙은 발이 어는 것만큼 참기 힘든 고통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옛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나눔의 행복을 실천하면 좋겠다. 그 나눔은 버선 한 켤레의 온정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very kingdom divided against itself will be laid waste
and house will fall against house.
And if Satan is divided against himself,
how will his kingdom stand?
For you say that it is by Beelzebul that I drive out demons.
If I, then, drive out demons by Beelzebul,
by whom do your own people drive them out?
(Lk.11,17-18)
 




Kentaro Haneda == La Califa


 

I Have Nothing / Whitney Hou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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