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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예수의 새로운 가족 l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3 조회수74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7년 1월 23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코 3, 33-35)

 

 And looking around at those who sat there he said,

"Here are my mother and my brothers.

Whoever does the will of God is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to me."

 



 ☆☆☆

 

예수의 새로운 가족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의 집(3,20)에서 음식을 드실 겨를도 없이 모여든 군중을 가르치시고, 돌보시는 동안에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들은 친척들이 그를 붙들러 나섰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정면으로 예수와 맞섰다.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베엘제불(파리의 신)이나 다른 더러운 악령에게 사로잡혔거나, 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 구마기적을 행한다고 비방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비방하는 율법학자들에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 죄는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3,29)고 못을 박았다. 이는 곧 예수께서 모든 일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제 예수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이 집 앞에 와서 사람을 시켜 예수를 불러달라고 청한다. 여기서 미리 알아두어야 할 점은 ’형제’라는 단어가 히브리 및 그리스 문화권에서 아주 폭넓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계혈족의 2촌만을 형제라 하지 않고 조부, 증조부, 고조부 등 아버지와 1촌의 관계를 갖는 모든 혈족을 관계상 ’형제’간이라고 한다. 이 점을 무시하면 성모 마리아에 관한 ’평생동정교리(平生童貞敎理)’에 하자(瑕疵)가 발생한다. 아무튼 예수를 만나려 하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를 붙잡으려고 찾아 나선 바로 그 친척들을(3,21) 말하는 것인가? 이 대목은 정확히 말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형제들만 왔다면 몰라도 예수의 어머니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한편 다른 학자들은 그 친척들과 오늘의 가족들은 별개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전자(前者)가 맞다면 예수가 미쳤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를 붙잡으러 찾아 나선 예수의 친척들 중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후자(後者)를 따르자면 왜 갑자기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나타나 예수를 만나려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묻다보면 결국은 예수가 미쳤다는 생각은 않는다 하더라도 예수를 걱정하여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33절) 예수께서는 둘러 앉아있던 사람들을 보시며 말씀하신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34절)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인가? 이 말씀이 허공을 가르며 외쳐지던 순간, 어머니와 형제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나마 문밖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피는 물보다도 진하다’고 했는데, 낳아준 어머니와, 같은 조상을 두고 함께 자란 형제들을 무시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두고 어머니며 형제들이라니! 정말 예수는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말이 나왔으니 예수는 사실상 미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본의(本意)는 그 다음 말씀에 있다. 즉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35절)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새로운 가족관계를 선포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다 예수의 형제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께서는 혈연적이고 세속적인 가족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족공동체를 택하신 것이다. 이 가족공동체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라, 예수님을 포함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예수께서는 자신도 하느님을 뜻을 행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의 등장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자신마저도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면 우리자신은 물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하느님을 뜻을 행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당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지적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피로 맺어지는 혈연은 한번으로 영원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관계를 허물어버리셨다. 이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설정되었다. 그 소속기준은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행하는 것이다.

-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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