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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 이영섭 신부님 생각 . . . . . [김영진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3 조회수910 추천수12 반대(0) 신고

 

 

 

 

 

 

나이 오십을 넘기고 신부생활을 23 년째 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어찌 하나뿐이랴?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데 이리 힘이 들 줄 몰랐다.

경북 한티재 고개 산 속에 숨어있고,

피정의 집 수도원에서 피정 기도를 하면서 며칠째 생각했다.

 

뒤돌아보면

인생은 기억에 남는 얼굴과 사라져가는 얼굴을 만들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에 잡히며 내 가슴 속에 깊은 사랑과 스승으로서의 고랑을

만드신 분은 몇 달 전 고인이 되신 신부님이시다.

 

그분은 사제생활 50년을 하셨고 80세에 가셨으니

하늘이 주신 천수를 다하셨다고 할 수 있다.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분 즉 이영섭 신부님이실까?

나와는 오래 살지도 않으셨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으셨는데...

이 신부님의 생각이 떠올라 사라지질 않았다.

 

유달리 작은 키에 약주를 즐겨 하시던 신부님,

연세가 드셨어도 언제나 어린이처럼 겸손하게 모두를 대하시던 신부님.

하느님하고 하시는 것이라 하시며 혼자 고스톱을 치시고,

장기를 두시던 신부님,

 

다려진지 오래된 양복에 소매가 다 떨어진 로만 칼라 셔츠,

코가 까지고 뒤축이 다 닳아 없어진 구두에 기워 신은 양말,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자주 깜빡거리시던 작은 눈,

고요한 호수처럼 작게 차분히 말씀하시다가 긴장이 되시거나

생각에 잠기실 때면 귀를 못살게 만지작거리시던 습관,

자주 입맛을 다시시며 박자에 맞추기라도 하시듯

쉴새없이 코를 킁킁대시던 소리...

 

천주교 신부로서 또 어른으로서의 권위는 솜털 하나만큼도 갖추지

않으셨던 그분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극히 겸손하게 낮은 자의 자세로 사셨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면서 높아지고 교만해지기는 쉬워도

낮아지고 겸손해지기는 어렵다.

 

외적으로 한다면야,

그 옛날 7 개국어를 하셨고,

로마에서도 유명한 울바노대학에서 수학하셨으며,

천주교 원주 교구의 주요 직책을 고루 맡고 계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이 사셨던 길을 더듬으면...

강원도  산골 오지를 자진해서 다니시며 성당을 세우시고

전교하시며 사셨다.

그분의 친구이신 양대석 신부님을 내가 어린 신부였을 때

잠시 모셨는데 양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는 언제나 구호물자 양복을 입었기에 상의는 그에게 반코트와 같았다.

 또 상의 주머니에는 시골 아이들에게 줄 껌, 사탕, 초콜릿이 있는데

 미군부대에 미사를 드리러 가서 사거나 얻어 오시는 것이었다.

 요한 세자의 말씀인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날로 작아져야 합니다'를

 몸으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철학자요 성인이다."

 

유학에서 돌아온 그분은 중석광산으로 유명한 강원도 상동지역을

지원하셨다.

지금도 격오지인 그곳이 45년 전에야 어떠했을까?

언젠가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시던 중에,

 

상동에 들어가는 석탄차를 얻어 타기 위해서 석항이라는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석탄 때는 좁은 대합실에서 2 - 3일을 기다리셨다는 것,

석탄 차를 타면 지붕이 없는 차였기에 추워서 웅크리고 끌어안고

갔다는 것,

상동에 내리면 아프리카 사람처럼 이빨만 하얗게 되었다는 것.

그래도 신부로서의 보람과 기쁨이 컸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내가 유독 인생의 열매를 고민하며

이영섭 신부님을 기억하는 것은...

 

부질없이 달려온  내 삶의 뒤안길을 정리해 보고 싶어서이다.

돌아가신 그분의 유품이

두세 상자의 책을 제외하면 입으시던 옷가지 몇 벌과

기도서, 묵주,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 하나였다고 한다.

 

하늘 가득히 채우고 쌓아두고 싶은 이 욕망과

지칠 줄 모르며 오르기만 하는 교만한 나의 가슴이...

 

낙옆 한잎,

잡초 한가닥도 가르치고 있는 교훈,

즉 낮아지고 놓아야 되는 삶으로 언제나 변화될 수 있을런가!

 

 

 

- [미주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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