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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 예수다운 말씀 ; 경구(아포리즘)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2 조회수653 추천수5 반대(0) 신고

 

<진정 예수다운 말씀; 경구(警句)>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마르 3,28-29)


  다음 질문을 읽고 무엇을 설명하는 단어인지 맞추어보십시오. 아마 아시는 분들이 제법 되실 것입니다. 10문제 중 몇 개나 맞출 수 있는지 풀어보세요.

“사람들이 그 속에 많이 들어있어요.”

“엄마랑 목욕하면 이걸 꼭 해야 해요.”

“큰 건 엄마가 갖고 작은 건 내가 가져요.”  

“이건 작지만 들어있을 건 다 있어요.” 

“어른들이 어린이가 다 갈 때까지 보고 있어요.” 

“이걸 하려면 아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엄마가 아빠랑 외출할 때 만날 이걸 해요.”

“만날 맛있다고 하고 맛없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사람이 가고나면 막 혼나요.”

“어른들은 애들이 자꾸 해달라고 하면 머리 아프니까 싫어해요.”      

               

  얼마 전에 TV에 유치원아이들이 나와 수수께끼 같은 말로 단어를 설명하면 출연자들이 그 설명을 듣고 단어를 알아맞히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그 아이들의 답을 들으면 참 기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본 대로 꾸밈없이 설명했기 때문에 이런 답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에겐 어른이 되고 나서 어린아이 적 기억이 다 사라졌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문처럼 느낍니다.


  혹시 “마주 이야기”라는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대부분 교우님들은 아마 생전 처음 듣는 단어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저도 처음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 뜻은 말하자면 육아일기인데 어린아이가 부모나 그밖에 어른들과 마주보며 이야기하다가 쓴말을 일기처럼 기록해 놓은 것이랍니다.

  그 마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배꼽 잡으며 웃을 내용이 많습니다. 아이가 커서 자기가 한 말을 다시 읽고 5,6 세 때 어떤 말을 했었는지 추억해보는 것이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답니다. 부모들도 기억에 가물가물 해지는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 좋답니다. 또 다 자란 아이와 두런두런 마주 앉아 옛일을 새겨보며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답니다.


  5살 어느 날. 5일장에 갔는데 바로 앞에 뻥튀기를 튀기자

아이; 엄마~! 뻥튀기 사주세요!

엄마; 집에 있는 과자 다 먹고 사 줄게.

아이; 지금요~! ~가 냄새가 고소해서 정신을 잃겠어요!

        지금 사주세요! 네~!

(아들네미가 뻥튀기 냄새에 정신을 잃겠다는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 주었죠~뭐)


   둘째를 임신한 어느 날.

아이; 엄마, 애기 얼만해졌어요?

엄마;  요~만큼.(손가락 한마디를 가리키며)

아이; 그럼, 입 벌려 봐요?

엄마; 왜?

아이; 으으응~ 입 벌려 봐요~!

엄마; 아~!(하며 입을 크게 벌리니 제 입에 입을 가까이 대며)

아이; 아기야! 뭐하니!

엄마;(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너무 웃어 눈물 찔끔)


 위 내용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선 재미있죠.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죠? 그리고 꼭 적어두어 기억에 남기고 싶어집니다. 잊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말씀과 경구를 통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적대적인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과 논쟁에서 그들의 허를 찌르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상대방에게 대꾸조차 할 수 없게 만들만큼 기발하면서도 촌철살인 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그런 경구들은 흔히 전해내려 오는 속담이나 격언과는 형식은 비슷합니다만 그 목표와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속담과 격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처세술을 도와주는 지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무리 없이 지내고 성공하는 내용을 주로 말합니다.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경구는 많이 다릅니다. 그 목표가 가치관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상식적인 데서 바꾸어 새로운 시각을 갖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구는 예수님만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속담과 격언이 ‘노인네 잔소리’라면 경구는 ‘촌철살인의 活語’입니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성인과 철학자도 감히 예수님과 비슷한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같은 시각을 지닌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비슷한 내용인 듯해도 근원을 따져보면 천양지차가 납니다. 신약성경에 이런 경구(아포리즘)가 약 100 여개 담겨 있습니다. 이 경구는 예수님께서 직접 이야기 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경구는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지금도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상하게 들리고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가치기준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알아듣기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의 율법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그 신성을 모독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차에 예수님께서 신성 모독하는 말은 용서를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한마디로 이제껏 금과옥조처럼 여긴 것도 한번 의심해보고 새로운 가르침에 따라 살아보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니 그 반향이 엄청 컸을 것입니다.


  성령은 새로운 질서이며 관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을 우선으로 하는 관계입니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아닌 분은 모두  하느님이라는 시각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 반하여 행동하면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남이 중심이라고 여기는 자는 작은 자이며, 섬기는 사람이며, 좁은 길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 길을 앞장서 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길이 올바르고 진리라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증거 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성령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과연 인간으로써 그 누가 이런 어려운 길을 따를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들겠지만, 그 길에 발만 내 딛는다면 나머지는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마련하시고 성령께서 협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의심하면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주님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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