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펌 - (134) 가난한 사랑 노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1 조회수387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386       작성일    2004-07-03 오전 11:04:50
 
 

2004년7월3일 토요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ㅡ에페소2,19-22;요한20,24-29ㅡ

 

        (134) 가난한 사랑 노래

                                        이순의

 

<오늘은 할아버지 유봉준 토마스 신부님의 영명축일입니다. 저희 본당에 계실 때 써

드린 "나는 설거지를 잘 하시는 할아버지가 더 좋더라."는 글을 올리고 싶어서 낡은 원

고를 뒤져 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먼지만 쌓일 뿐, 모두 나눠주고 가진 원고가 없는

것 같아서 그 시절에 써 둔 원고 하나를 대신 합니다. 은퇴하신 할아버지 유신부님의

축일을 축하 올리며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버렸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2001년5월27일 일요일 밤.

詩를 외어야 하는 숙제를 하다말고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의 입에서 한숨 비슷한 탄식

쏟아져 나왔다.

"엄마! 선생님은 우리들더러 이 詩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데 나는 그 말이 틀리다고

생각해," 라고 불평이다.

그리고 다시 詩를 외어 가더니 이 詩 만큼은 외우지 말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또 탄식을

한다.

"나는 이 詩를 외우면 아빠 생각이 나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

그리고 또 한숨을 쉬면서 詩를 외운다.

"그건 너지만,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사는 요즘은 가난한 아이라도 진정한 궁핍을 느

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건 선생님 말씀이 맞으셔." 라고 일러 주었지만, 구절구절

을 한 연씩 읽어 갈 때 마다 이유를 대면서 한숨과 탄식과 저미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서 이런 詩는 외우라고 하면 안 된다고 그 예쁜 입술이 계속 쫑알거린다.

 

詩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짜고 누워있는 아들을 보며 살며시 내 방으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중하게 가슴깊이 소유하신 아드님께 깊

은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아빠를 진실로 사랑해 보지 않았다면 아드님께서 어찌 저런 감성으로 몸부림하는 절

절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가족이 지닌 가난에 대해 함께 노력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가난에 대해 아픔

을 느껴 서러운 희망을 다짐할 수 있었겠는가?!

친구들은 간혹 갖지 않은 원망을 무능한 부모로 여겨서 부모님을 비하하는 속어로 통

용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러지 않으신 아드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진 것 안에서는 가장 큰 배려를 한다고 했건만 어찌 자기가 갖고

싶은 욕구 충족에 대해서 스스로 기를 꺾어 포기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없었겠는가?

그런 아픔들이 아빠를 사랑해서 이기 때문에, 아빠가 불쌍해서 이기 때문에, 그러했던

순간들이라면 지금 저 詩는 구구절절이 내 아들의 가슴을 후비고 있지 않겠는가!

중학교 2학년1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린 詩 한 수로 인한 사랑노래를 어미는 어미대로

가슴을 저미며 불러보고 있다. 아드님께 결코 헛되지 않은 이 가난의 선물을 감사하며

희망의 노래로 축복의 노래로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아들의 방에서 아들은 아들대로 詩를 외우고 있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그리고 조용해 졌다.

 

아들의 떨림이 어미에게까지 감염이 된 깊은 자정에, 뚫린 듯 허허한 가슴으로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구겨놓은 이불 위에 질펀히 배를 깔고 엎드려 가슴팍 깊숙이 베개로 받침점을 삼아 시

집을 보며 그대로 눈꺼풀만 내려와 있다.

내 아들은 수면의 저쪽에서도 詩를 읽고 있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ㅡ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

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

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에페소2,20-22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