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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세례 축일 아침에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8 조회수548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 세례 축일 아침에>


오늘 아침 제대 앞에 말구유가 사라졌습니다.

한 달 남짓 흥겨웠던 축제는 일상 속으로

즐거웠던 기억을 넘겨주었습니다.

이젠 무엇으로 제대를 꾸밀까요?


산과 들에 핀 꽃을 다 따다

아름 들이 꽂아 두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제 맘에 흡족해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으로 꾸밀까요?


내일부터라도 묵주신공 열심히 바쳐

반들반들 윤이 난 장미향 묵주 드릴까요?

묵상 기도 일기처럼 당신께 바치고서

책으로 엮어다가 제대위에 올릴까요?


하지만 어찌해도 성에 차지 않으실 것 같으니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마침 오늘 고해신부님께 받은 보속이

감실 앞에 앉아 20분 간 묵상하기였습니다.


요르단 강 흐르는 물에 어중이떠중이 묵은 죄 씻어

발 담그기조차 꺼림칙하지만,

희고 흰 몸 당신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첨벙 온 몸을 담그셨습니다.


세례자 요한 앞에 줄지어 선 인파 뒤에

큰 죄인인양 묵묵히 차례 되기만 기다리셨습니다.

새치기라도 이 몸이 그 긴 줄에 끼어도 되는지요.

늘 하던 짓인데 새삼스레 허락 받자니 닭살 돋습니다.


하나같이 남루한 옷차림에 검고 찌든 얼굴이지만

두 눈에 서린 선량한 모습 정말 의외였습니다.

간혹 섞여있는 군졸들과 멋진 옷차림한 사람들도

제가 보기엔 저보다 더 겸연쩍어하며 뉘우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는 뇌성보다 힘차며

키는 작아도 부라리는 두 눈 맞추기가 겁났습니다.

물속에 제 몸 담구지 않으면 더 큰 사단이 벌어질 듯하여

바라던 대로 또 한 번 자맥질 해 봅니다.


차디찬 물에 화들짝 깨어나니 언뜻 들리는 소리

깨끗해진 몸을 가지고 오기보다

지난밤에 꾸었던 마지막 꿈을 가져오며

어제하루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치라 합니다.


꿈에 본 것은 어찌하면 누런 돼지 잡는가하는 생각뿐이었고

하루 종일 시장 통에서 악다구니 싸움만 했으며,

식당 아줌마가 돈 계산 틀린 것을 모르는 체 했으니

면구스럽고 죄송하여 입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딱히 가슴에 응어리져 맺힌 사연은 언젠지 기억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손 내밀지 못한 부끄러움은 늘 반복되고요.

앞장서 나서기보다 어찌하면 적당한 선에서

상처주지도 입지도 않을까만 통박 재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마저 내게 달라고 하십니다.

거창하게 순명이니 정결이니 청빈이니 말하지 않아도

네가 지니고 있는 그대로를. 악다구니한 것, 뒷걸음친 것,

거짓부렁 한 것, 이리저리 통박 잰 것 모두를 달라고 하십니다.


고해신부님 주신 용서기도가

이다지도 빨리 답 올 줄 알아채지 못했지만

신부님 강론 말씀에 귀 여니 모든 게 일목요연,

죄 없으신 당신께서 세례 받으신 연유 알듯 합니다.

 

저의 모든 부족한 것을 감싸 안아주시고 지켜보기 위한 것이며,

잠시 보인 열심이라도 잊지 않으시고 상주시기 위함이지

잘못한 것 벌주시려  눈 부릅뜨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생긴 대로 매일 제대 앞에 나서기만을 기다리십니다.


 


The Power Of Love - Vienna Symphonic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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