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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형제가 추위에 떨 때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8 조회수713 추천수11 반대(0) 신고

한 형제가 추위에 떨 때

 

도와 달라는 간청이 마침내 나의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

 

추운 겨울 날, 눈 내리는 아침이었다. 그때 나는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느 본당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전화 벨이 울렸고, 나는 아직 코트도 벗지 않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물질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고, 나는 그 즉시 그의 부탁을 무시해 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 사람을 "정신 나간 알코올 중독자라" 라고 부르고 있었고, 나 혼자 있을 때사무실에 찾아오면 문을 열어 주지 않았었다.

 

그 사람을 어찌해야 좋을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만..."

 

나는 그 사람을 달래 보려고, 그런 요청들은 모두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곳 담당자가 지금 자리에 없다고 하였다. 사무실에는 현금이 없고 다만 음식이나 식권을 나눠줄 뿐이라는 설명도 했다.

 

그리고는 담당자에게 메시지를 전하겠으니 나중에 그에게 전화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 남자는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톰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식권을 줘도 괜찮고 옷이 몽땅 젖어서 그러니 침낭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통화가 안 됐고, 그래서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얼마 후, 전화벨이 다시 울렸을 때, 웬지 톰일 것 같아서 그냥 자동 응담으로 넘어가도록 내버려뒀다. 톰의 전화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실은 그와의 통화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 시간 동안 톰은 5분 간격으로 전화했다.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고, 교환원이 이쪽에서 응답이 없다고 일러주는 말을 들으니 수신자 부담으로도 전화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그의 전화가 성가시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결국 차라리 전화를 받느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힐 터였다. 하루 종일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수화기를 들고서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달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예, 메시지를 전해드리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되어서....오늘은 신부님도 안 계시고.... 제가 해 드릴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네요. 미안합니다."

 

 

 가책을 느끼다

 

첫 번째 양심의 가책이 엄습했다. 주임 신부님이 계셨다면 톰에게 찬장에 있는 음식도 꺼내 주고 주머니에 있는 돈이라도 집어 주셨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분이 그런 친절과 관용을 베푸시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톰은 매우 절박한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옷은 젖었고, 추위에 떨고 있으며, 내가 다른 사람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그 사람의 필사적인 간청에 그렇게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대했다는 것을 인정하려니 솔직히 몹시 창피한 생각이 든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란 고작 이런 것이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미안 합니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 담당자와 계속 연락해 보겠어요. 따뜻하게 잘 챙기시구요."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두 번째 양심의 가책이 거세게 밀려왔다. 이런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 2, 15-17)

 

다른 구절들도 생각났다. 이 노숙자는 기도에 관해 비유한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나를 귀찮게 했다. (루카 18, 5) 그는 사람답고 고귀하게 대접받아야 마땅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태 5, 3)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가슴속에서 메아리쳤다. 토빗기 4장 7절의 말씀은 더 직접적이었다.

 

 "네가 가진 것에서 자선을 베풀어라....누구든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

 

 

 실천에 옮기다

 

나의 모순되고 위선적이기까지 했던 태도를 뉘우치자 순식간에 회심이 일어났다. 심장이 마구 뛰었고 마음속에 무언가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내 안의 차디찬 독선과 마주치자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으로 낯이 뜨거워졌다. 나의 외적인 행동이나 내적인 성향 모두를 당장에 고쳐야 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다락에서 침낭을 꺼내고, 주방 찬장에서 식료품을 챙기고, '비상금'에서 1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이것들을 모두 꾸려서 종이가방에 담고 그 위에 톰의 이름을 적은 후, 성당으로 다시 가서 사무실 로비에 있는 의자에 올려두었다.

 

한 시간도 안 되어 톰이 다시 전화했고, 나는 봉투가 있는 곳을 일러 주었다. 톰이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하고 말했다. 나도 답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나는 그에게 내가 주는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고, 본당의 누구한테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은총이 내리다

 

그 다음 주 어느 날 아침에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톰이 교회 정문과 계단을 청소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눈과 얼음, 흙모래 부스러기까지 깨끗이 치우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고,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가 말했다. "그냥 도와드리는 겁니다. 지난주에 제게 얼마나 친절하셨던지, 뭔가 보답을 해 드리고 싶어서요." 그가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 모습은 얼마나 다정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내가 준 선물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다시는 톰을 보거나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매우 짧았지만 내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지금도 톰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 느꼈던 평화로움과 즐거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은총의 도구로 삼아, 서로에게 축복이며 서로에게 그리스도가 되도록 하셨다.

 

 

*이 글을 쓴 제니스 스미스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에 살고 있다.

 

 

                              <말씀지기의 "내 안의 말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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