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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분은 우리에게 원형을 보여주셨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0 조회수522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분은 우리에게 원형을 보여주셨다.>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마르 3,20.21)



  인간이 동물과 차이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한 가지는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시행착오를 개선하여 보다 좋은 것을 바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마저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통하여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올 때 반응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어떤 행동이 비정상적인지 하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들의 행동에는 다양한 양태가 있는데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을 성격이라고 부릅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정신 중에 의식이 작용하는 네 가지 기능을 사고기능, 감정기능, 감각기능, 직관기능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이 네 가지기능 중에 하나가 지배적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격을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 성격으로 나눕니다. 또 태도에 따라 외향적 성격, 내향적 성격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비정상으로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점 정상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현대에 올수록 사회가 다원적으로 변하게 된 것도 다 이런 결과 때문입니다.


  또 많은 경우 한쪽으로 치우쳐 조화롭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병적인 상태에서 보이는 행동 때문에 본인과 이웃이 힘들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과 유별나게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경우 미쳤다라고 표현합니다. 미쳐 보이는 사람들은 보통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입니다. 그것이 건전한 방향에서 이루어질 때 초월적 에너지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 에너지는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타인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에너지를 움직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동이라고 부릅니다.

  예술가가 지어낸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시와 소설 등 글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그림을 통해서, 행위 예술인 연극과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은 감동을 받습니다.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 변화는 대부분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예술작품을 자주 찾아가 감상하고 싶어 합니다.


  아쉽게도 대부분 그 감동이라는 변화가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잊힙니다. 감동으로 인한 충격이 하도 커 그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질 때 우리는 기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많은 기적들이 이런 상황에서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감동적 장면을 직접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미쳤다고 말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그 장면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 기적이 마음속에 깊게 각인이 되었습니다. 자신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심리학자 융은 이런 것을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기 이미지가 깨어난 것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관념이 없었던 그리스 세계와 로마에 그렇게 빨리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원형에 대한 이미지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자기원형의 예증이다.”라는 말로 이를 요약합니다. 예수께서 즉 잠자고 있던 인간의 꿈을 깨운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 2,20)라는 말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이 말도 그냥 아무 감동 없이 듣는다면 다 미친 사람 말처럼 들립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예수님의 몸과 말씀이 우리 안에 내재한 인간의 원형을 깨우고 키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다면 온전히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로 도약해 보려는 꿈이 있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 했지만 보두 실망스런 결과만 가져 왔습니다. 여전히 인간은 나약했고 자기 안위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초월하는 것보다 자기를 내세우는 것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실망스럽고 괴로운 고통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전쟁과 기아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바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리석고, 가치 없고, 미친 짓이라고 외면했던 방법이 오히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또 그 길이 옳다는 확실한 증거까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붙잡으려 했던 분이 가장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여겼던 그 길이 실은 가장 옳은 길이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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