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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괴짜 수녀일기]끝날 까지 사과나무를 심는 이들 < 24 >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9 조회수710 추천수9 반대(0) 신고

 

                끝날 까지 사과나무를 심는 이들

 

                             


   나는 오늘 너무나 반가운 편지를 받았다. 2년이 넘도록 소식이 끊겼던 일본인 하야시 선생에게서 온 편지였다. 오래 전 일본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그는 농아학교 교장 직을 막 정년퇴임하고 청각장애 교육복지협회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인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의 농아교육을 위해서도 헌신적이었고, 연수회 강사로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갔다. 그의 외모가 한국인 같아서인지 나는 왠지 모르게 그분에게서 아버지와 같은 푸근한 인상을 받았다.


   언젠가 만날 약속을 하고 그분 사무실로 찾아 갔는데 볼일이 있어 잠깐 나갔다 온다는 내용의 쪽지가 놓여있었다. 조금 후 반가워하며 들어온 그의 손에는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마주 앉아 하나씩 나눠먹던 그 맛은 생생하다.


   아니, 격의가 없고 따뜻했던 그의 마음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언젠가 초대받아 간 한국식당에서 그분은 냉면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비워내는 바람에 우리들 사이에서 ‘냉면 국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몇 차례 편지를 해도 연락이 없어 혼자 마음속으로 ‘천당에 가시고 말았구나, 하긴 연세도 꽤 많으시니까’라고 그의 죽음을 서글퍼하며 가끔 기도도 드렸었다. 오늘 편지를 받고 보니 꼭 죽었던 이가 다시 살아온 것 같은 충격이었다. 편지를 읽어내려 가면서 나의 충격은 계속 이어졌다.

 

   내용인즉슨, 그동안 답장을 못한 것은 2년 반 동안 큰일을 맡아 하느라 조금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아파트들이 너무 낡아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하였는데, 120가구의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공사계획부터 감독 등의 책임을 맡아 하다 보니 이제야 겨우 연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노인성 난청도 생겨 연수회 강의는 하지 않으며, 앞으로는 자료 등을 정리하여 논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젊음이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내일 종말이 온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났다.


   이와 함께 생각나는 분은 한평생 농아를 위해 일하신 독일인 허 까리따스 수녀님이다. 밤늦도록 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을 쓰는 것도 아까워하시는 그분은 여덟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는데도 무척 건강해 보이신다.

 

   “자수를 놓은 것을 보면 뒷면은 엉망이어도 앞면은 곱지 않으냐. 사람들은 왜 굳이 뒷면만을 보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은 항상 앞면만 보신다는 낙천가이다. 두 분의 공통점은 방년(?) 82세,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분이라는 점이다.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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