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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2) 애물단지 보물단지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6 조회수612 추천수6 반대(0) 신고

 

 

 

언젠가 장이수 요한님의 글에서 들은 음악이 너무나 좋아서 저장해 두었다가 제가 올린 글에 단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흐르고 있는 이 노래입니다.

제목도 모르고 가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음악감상을 할 때 저는 가사보다도 멜로디에 더 마음이 갑니다.

그러니까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외국노래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게 보면 음악은 언어 종교 문화를 떠나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세계적 공통어라는 생각입니다. 

어느날 안방 컴 앞에서 이 음악을 틀어놓고 듣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던 딸이

 

"어! xxxxxxxxxxx네!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였어? 난 어디서 그 노래가 나오나 했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딸이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빨리 굴려서 하는 소리라서요. 

 

"너 이 노래 제목 아니? 누가 부른 노래야? 언제 적에 나온 노래야?"

 

연거퍼 묻는 말에 80년대쯤에 나온 노래인데 여러 사람이 리메이크 해서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목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 종이에 써보라고 했습니다.

노래 제목은 이랬습니다.

 

           ㅡ Sorry seems to be hardest word ㅡ

                   

 

애꿎은 딸만 야단쳤지요.

 

"건방지게 왜 발음 굴리는 거야?

히어링 전혀 안되는데, 콩글리쉬로 해야지 콩글리쉬로....

어휴! 글자로 써놓으니까 이제 좀 알아보겠네."

 

그리고 나서 노래를 다시 들으니까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귀절이 그제서야 귀에 들어오더군요. ㅎㅎㅎ

그러나 여전히 끝소절만 들립니다.

하기는 요즘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사도 가끔은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남의 나라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나요.

 

수년전 어느 드라마에서 출연자가 대사 중에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납니다.

"새털같은 개나린데...."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어요.

그런데 앞뒤 대사를 연결하여 새겨보니

"새털 같은 게 날인데...." 하는 말이었어요.

 

애와 에의 발음 구별이 잘 안되는 사람들 중엔

"게"를 "개"라고 발음하더군요.

그래서 "너희들이 게 맛을 알어?" 하는 말을

"너희들이 개 맛을 알어?" 로 발음하는 걸 보았습니다.

내나라 말도 이렇게 못알아 듣는 판인데 남의 나라 말을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어요?

 

제 영어실력은 학교 다닐 적에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실력도 없지만 더구나 듣기는 더 안되고 그나마 문자로 써놓으면 아는 단어가 좀 보이고 앞뒤 꿰맞추어 겨우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노래 가사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누구에게나 한두 가지 쓸모 있는 구석이 있고 취할 점이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동안 사실 전 우리 딸을 무시하면서 살아왔던 게 사실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도 시원찮았고 어렵사리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네가 나만큼 많은 독서를 했니? 머리가 좋니? 하는 마음으로, 한문은 아예 까막눈에 다름없는 딸을 은연 중에 한자락 깔고 속으로 무시했었습니다. 

 

어쩌다 딸에게 넌 어떻게 그렇게 상식적인 한자도 모르냐고 하면, 한문 몰라도 된다고 영어는 알지 않냐고 퉁명을 떠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우리말엔 동음이의어가 많아 한자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딸이 알고 있는 한자는 아주 쉬운 글자 아마도 20자를 넘지 못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어느날 텔레비젼에서 온천이란 글자가 나오는데 그걸 몰라보더라구요.

문맹자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어를 모른다고 날 구박하는 거였어요.

 

"이렇게 쉬운 말도 못알아들어?

 하디스트, 하드의 최상급이잖아?"

"누가 그걸 모르니? 니가 발음을 굴려서 못 알아들은 거지."

 

그러면서도 이럴 때 쓸모가 있구나!

도통 모르겠던 노래 제목을 알았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사실 영어깨나 한다는 아들도 히어링은 전혀 안된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노래제목같은 건 아들은 잘 모릅니다.

 

생각해 보니 공부 잘 하던 아들이 모르는 것을 공부 못 하던 딸이 아는 게 참 많더라구요.

어쩌면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딸이 훨씬 많이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사람마다 각자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장점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아보이고 단점만 보려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빠보이겠지요.

 

요즘 제가 치아 때문에 여러가지로 불편을 겪고 있어 그런지 사람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만 보게 됩니다. 텔레비젼을 봐도 출연자의 이만 봅니다.

덕분에 어떤 사람의 이가 고르게 잘 나고 어떤 이의 이는 엉망이더라는 것 정도를 알게 되더군요.

 

법정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여자 탈렌트는 평소에 전혀 예쁘지 않은 외모에 비중있는 배역도 아니어서 그냥 무심히 보아왔는데, 어느 날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어금니가 훤히 다 들어나 보이는 그 장면에서 난 그만 놀라고 말았어요.

그렇게 깨끗하고 충치치료 한 흔적 하나 없는 치아는 난생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상아빛의 그 매끄러워 보이는 이는 보석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난 그 탈렌트만 나오면 이가 아름다운 여자! 하면서 유심히 보게 되었답니다.

 

사실 어금니까지 남에게 보일 일이 없고 얼굴이 아름다운게 훨씬 더 유리한 게 탈렌트란 직업이겠지만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치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참 좋아 보였습니다.

내 치아가 지금 약하고 건강치 못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역시 신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정도는 남이 부러워할 만한 장점을 주시는가 봅니다.

 

우리 딸만 해도 뒤돌아 생각해보니 장점이 꽤 있더라구요.

우선 추석과 설날 기차표 예매는 딸이 없으면 못할 겁니다.

인터넷 예매를 하는데, 아들은 그때마다 집에 없기도 하지만, 그런 예매에는 서투르고 날렵하지 못해서 안되고 우리 부부도 손이 느려 못합니다.

새벽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다가 여섯시가 되는 순간에 번개처럼 손을 놀려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데 어림도 없지요.

그나마 딸 덕택으로 매번 표를 끊고 있습니다.

 

그동안 난 늘 딸의 단점만 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워하기도 했고, 내 속을 썩이는 애물단지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자식이란 그저 아롱이 다롱이라고, 아들은 늘 우리집의 보물단지 희망이었고, 딸은 수시로 실망을 안겨주는 애물단지였더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딸의 장점만 보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딸이 내 눈에 보물단지처럼 귀한 존재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지요.

금년에 거는 간절한 나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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