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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에 물주기 ㅣ윤병훈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5 조회수559 추천수12 반대(0) 신고

                               

 

 

                          꽃에 물주기 


   화분을 잘 관리해 삭막한 주거공간을 싱싱하게 가꾸는 가정을 볼 때가 가끔 있다. 콘크리트 건물에서 자라는 크고 작은 나무들, 실내를 장식하며 생명력 넘치게 자라는 화초들 덕에 우리들은 풍요로움을 느낀다.


   헌데 그런 고마움을 주는 생명을 관심 있게 돌봐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우리 양업 학교 건물에 놓여져 자라는 화분에 학생들은 전혀 무관한 것처럼 지낼 뿐, 1년 내내 누구 하나 자발적으로 물 한번을 주는 학생이 드물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책임을 맡은 사람 이외에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은 그런 생명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기 십상이다.


   한 엄마의 얘기가 생각난다. 어느 여름날, 엄마는 딸에게 집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라는 부탁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엄마는 딸이 모르게 두 개 화분에는 생화 같은 조화를 심어 놓았고, 나머지 두 개 화분에는 생화를 심었다. 엄마는 딸에게 물주는 방법을 정성껏 가르쳤지만 딸아이는 갑자기 책임진 일이어서 어떤 날은 화분이 넘쳐나도록 물을 주고, 어떤 날은 깜박 잊고 물을 주지 못했다.


   오랜만에 엄마가 집에 돌아 왔을 때, 두 화분에 심은 생화는 죽음을 맞고 있었다. 엄마는 딸아이를 불러 세워 "화초가 말라 죽었구나!"하자, 딸아이는 화초가 죽었다는 걸 그제야 알고는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글쎄요. 화분에 똑같이 물을 줬는데, 이 둘만이 이상하게 죽어버렸어요. 생생한 화초를 가리키며 이 둘은 여전히 생생한데 말입니다. 왜 이것만 죽었지요? 뭐가 잘못된 것인가요?"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딸아이에게 "얘야! 저 싱싱한 두개의 화초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란다. 너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니?" 딸은 화분에 물을 줘야한다는 의무감만 있었지 생명에 대한 책임자로서 소명의식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각자 생명과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많은 경우 책임에 대한 역할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의무감만으로 그 대상을 의례적으로 만나고 지나친다. 우리도 그 딸아이처럼 맡겨진 화초들과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일상의 반복처럼 생명을 대하다 망쳐버리는 것을 본다. 외형은 조화처럼 멀쩡히 살아있는 듯 싱싱해 보이지만 정작 생명은 책임자의 역할 수행 부족으로 골탕을 먹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지금 세상은 모두가 아우성이다. "나를 사랑해주오." 많은 이들은 생명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목마름을 호소하지만 안타깝게도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올바로 하지 않아 그들의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우리 신앙인들만이라도 참 생명 원리 '성체성사의 신비'를 통해 생명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


                  - 윤병훈 신부(청주교구 양업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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