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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조배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4 조회수650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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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조배

"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테오 28,20)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감실 안에 계신다.  티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모태 안에 계시던 바로 그 예수님께서 축성된 자그마한 하얀 면병의 외형 안에 계신다.  세상의 죄값을 치루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시어 편태를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바로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시어 면병의 형상으로 성합 안에 계신다.
죽은 이들 가운데로부터 부활하시고 천국에 오르시어 성부 오른 편에서 영광스럽게 다스리고 계시는 바로 그 예수님께서 제대 위에 계신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제대 위에 계신 예수님을 에워싸고 흠숭드리는 것을 폴리뇨의 복녀 안젤라가 환시 중에 보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음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께서 저기 계신다!"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이 말을 되풀이하면서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도 기쁨에 찬 열정으로 이렇게 외쳤다.
"저기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다같이 그분을 방문하십시다."  그리고 예수의 성녀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수님 당시에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 내가 예수님을 직접 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 내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체 안에 살아계신, 진정한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현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입니까?"

성 알퐁소 마리아 드 리구오리는 늘 하듯이 공손하게 말했다.
"지상의 군주들을 알현하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천국의 왕께서는 성체의 베일에 가리워 계시면서 누구든지 맞을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 . "

성인들은 분명히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를 알았으며, 그분을 사랑하며 또 몸소 함께 있음으로써 그분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특권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와 늘 함께 있는 것, 이것이 참된 사랑이 요구하는 바가 아닌가?

참으로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 조배를 하고 성체 강복에 참례하는 것이 성인들의 비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방문하는 시간은 온전히 사랑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천국에서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사랑만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1코린토 13,8).
제노아의 성녀 카타리나는 말했다. "감실 앞에서 보낸 시간은 제 생애 중에서 가장 잘 보낸 시간입니다." 
성인들의 생애로부터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하루에 열 번씩 방문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사도였던 성 막시밀리언 마리아 콜베 신부는 학생시절 때부터 하루에 평균 열번씩 성체 조배를 하였다.  개학이 되면 수업시간들 사이를 이용하여 소성당으로 달려갔다.  오전에 다섯 번 방문하고, 오후에 다섯 번 더 방문하였다.  그 중에서 매일 오후마다 꼭 찾아가는 성당이 있었다. 그곳은 성체가 현시되어 있는 로마의 한 성당이었다.
성 로베르트 벨라르민도 학창 시절에 학교에 오가면서 한 성당을 네 번씩 지나가게 되었으며, 그래서 하루에 네 번씩 예수님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쳐가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생각이 없고 무감각한 것은 아닌가?  성인들은 그들이 가는 길에서 성당을 발견하기를 바랬는데, 우리는 우리 바로 앞에 성당이 있다고 하여도 무관심하지 않은가?
가경자 제이 올리에르는 이렇게 썼다. "어디를 가는 길이 두 개가 있다고 하면 저는 성체에 더 가까이 있기 위하여 성당이 더 많은 길을 택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을 바라보면서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

천사적 청년이었던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츠카는 짬이 날 때 마다 성체성사의 예수님을 서둘러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수호 천사에게 부탁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천사여, 저 대신에 좀 가주시겠습니까?"  이 얼마나 천사적인 생각인가!  왜 우리도 그런 요청을 할 수 없겠는가?  우리의 수호 천사는 기꺼이 청을 들어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수호 천사에게 그보다 더 고귀하고 더 기뻐할 부탁을 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성녀 벨라데따도 한 젊은 동료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이 소성당을 지나가면서 잠시 들어갈 시간이 없으면, 수녀님의 수호 천사에게 대신 감실에 계신 주님께 가달라고 부탁드리세요. 천사는 그렇게 하고서도 수녀님을 충분히 뒤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알퐁소 로드리게즈는 문지기였다.  그는 임무 수행 중에 소성당 문을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마다 그는 최소한 주님 계신 쪽으로 사랑에 찬 눈길을 보내곤 하였다.  그리고 외출을 가거나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예수님을 방문하여 강복을 청하였다.

성 아오스딩은 그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즉 성녀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 외에도 오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씩 주님을 방문하였다.
일곱 자녀의 어머니였던 복녀 안나 마리아 따이기도 그렇게 했다.
보헤미아의 왕, 성 웬체슬라우스는 많은 성당들의 성체 성사를 방문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심지어는 혹한의 겨울에도 많은 순례 여행을 하였다.


"숨어계시는 예수님"께 가까이

여기에 왕가(王家)에 관한 또 하나의 좋은 예가 있다.
항가리의 왕비, 성녀 엘리사벳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왕궁 부근에서 놀곤 하였는데, 항상 소성당 가까운 곳에서 놀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못보는 사이에 자주 소성당 문 앞에 서서, 자물통에 친구(親口)를 하며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예수님, 저는 지금 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제 친구들을 강복해주세요.  안녕!"
이 어떠한 사랑인가!

파티마의 세 목동 중의 하나였던 프란체스꼬는 꼬마 묵상가였는데, 성체조배를 하고저 하는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주 조배하기를 원했고 "숨어계시는 예수님"과 가까이 있기 위하여 감실 앞에서 되도록 오래 있으려고 했다.  그는 성체를 "숨어계시는 예수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병석에 누워있을 때, 사촌 누나였던 루시아에게 그의 가장 큰 고통은 "숨어계시는 예수님"을 방문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꼬마 소년이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성 프란시스 보르지아는 매일 최소한 일곱 번씩 성체 조배를 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드 빠찌는 한 동안 하루에 33번씩 조배하였다. 현대의 겸손한 분도회 수녀인 복녀 마리아 포르뚜나따 비띠도 그와 같이 하였다.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알렉산드리나 다 꼬스따는 마음으로 전 세계의 모든 감실들을 방문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예들을 우리에게 놀라운 일들일 것이고, 성인들 중에서도 예외적인 경우들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체 조배는 신덕과 애덕의 행위이다.  신앙과 애덕이 있는 이는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있고저 하는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들은 신앙과 애덕에 의한 삶을 살았던 분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주교님이 신자들이 사는 한 촌락에 가게 되었는데 그 곳의 주민들은 모두 집의 문을 성당 쪽으로 향하도록 만들어 놓았음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이 성당에 갈 수가 없을 때에는 문 앞에서 주님의 집을 향하여 바라보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사랑의 법칙에 의한 것이었다.  즉 사랑하는 이와의 일치를 이루고저 함이었다.

하루는 지혜있는 교리 교사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만약 천국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너희에게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지금 어느 집에 계시는데 거기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한다면, 너희는 즉시 모든 것을 떠나서 그분께로 달려가지 않겠느냐?  너희는 하고 있던 오락이나 일도 멈추고 예수님께로 가서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하여 작은 희생을 할 수 있었음을 행복하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자, 이제 예수님께서 감실 안에 계시며 항상 너희를 기다리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가까이 계시기를 원하시고 너희에게 그분의 은총을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감실 안에 친히, 물리적으로 계시며, 우리들이 그분께 가까이 있기를 원하심에 대하여 성인들은 얼마나 고귀한 가치의 일로 생각했던가!  그래서 성 프란시스 드 살레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하루에 십만 번씩이라도 성체 성사의 예수님을 방문해야 합니다."

우리들도 성인들로부터 성체 안의 예수님을 방문하는 것을 배우자. 예수님과 더 오래 함께 있고, 우리 마음에 들어있는 것들에 대하여 말씀드리자.  그분은 우리를 사랑스럽게 보시고 우리를 당신의 성심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가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님께 단순함을 가지고 그리고 우리의 온 마음으로써 말씀드릴 때, 그분께서는 아기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입맞추고 안아주는 어머니처럼 해주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감실을 방문하여 마음으로부터의 대화를 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성체 성사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의 방문"이라는 제목의 매우 아름답고 비할 수 없는, 성 알퐁소의 책을 구해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삐에뜨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성 알퐁소의 이 책을 매일 저녁 감실 앞에서 성체 강복 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우리를 사랑으로 안타까이 기다리시는 주님을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방문함으로써 시작하자.  성 요한 보스꼬는 말하였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사를 매일 방문하는 것을 절대로 빼먹지 마십시오. 아무리 잠깐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음, 가능한 한 그 방문의 시간이 더 길어지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오랜 방문을 할 시간이 없으면, 짦은 방문들을 하도록 하자.  할 수 있을 때마다 성당에 들어가서 잠시라도 성체 성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사랑스럽게 말씀드리자. "예수님, 당신께서는 여기에 계십니다.  저는 당신을 흠숭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마음 안에 오소서."
비록 짧은 방문이라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성 요한 보스꼬는 덧붙여 이렇게 우리에게 권고한다.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많은 은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그분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그분께서 당신에게 은총을 조금만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그분을 드물게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마귀가 당신을 공격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체 성사의 예수님을 드물게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마귀가 당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여, 성체 조배는 마귀를 정복하기 위하여 지극히 필요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그러면, 마귀는 당신에게서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끝으로, 성 알퐁소 마리아 드 리구오리의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을 늘 기억하자.  "당신 일생의 모든 순간들 중에서 당신이 성체 성사 앞에서 보낸 시간이 일생 동안에 당신에게 더 힘을 주는 시간이 될 것이며, 당신의 임종 때와 영원에서 더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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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모든 가족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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