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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14일 야곱의 우물- 요한 2, 1-11 묵상/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4 조회수523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요한 2,1-­11)

“나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라고 한 서약이 그저 형식적인 의례인가? 혼인이 아직도 기쁨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의 이혼율, 낙태율은 심각합니다. 카나의 혼인잔치가 예수님을 통해 하늘과 땅이 결합하고, 하느님과 인류가 혼인잔치를 벌이는 때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세례로 마귀의 모든 행실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을 철저히 믿는 삶을 살겠다고 한 우리의 약속, 이 약속도 그저 세례 받기 위해 한 말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영적으로 나는 이미 하느님과 결별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 혼인잔치는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이루어집니다. 곧 세례자 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증언한 다음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그 다음날 세례자 요한의 제자 요한과 안드레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또 그 다음날 필립보와 나타나엘이 부르심을 받는데,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이니 헤아려 보면 7일째 날이 됩니다.

 

창세기에서 제7일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쉬신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내라고 명하심으로 인간이 노동의 열매를 누리고 쉼으로써 사는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창조주 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이날을 의식하며 복음서 저자는 7일째를 혼인잔치의 날로 의도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인류가 하느님과 화해하고 결합하게 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이루어지기에 예수님은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물을 맛좋은 술로 만들어 잔치를 흥겹게 함으로써 메시아 시대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의 때를 앞당긴 것은 어머니의 전폭적인 신뢰였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 말씀은 설사 예수께서 포도주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들의 행위는 무엇이든 뜻이 있다고 믿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일주일간 계속되는 잔치 도중에 술이 떨어진 것은 낭패가 아닐 수 없기에, 예수님이 알면 어떻게라도 할 것임을 믿는 마음도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잘 압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약속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은 다 그들을 위한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장 근원적이고 깊은 체험이 오늘 예수께 이르러 완성됩니다. 이는 우리도 어머니처럼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모든 것을 그가 시키는 대로 하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예수님의 ‘기적’과 ‘때’에 한몫을 하시며 어머니의 역할에 집착하지 않고 늘 아들의 사명에 봉사합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두 번 어머니를 향해 ‘여인’이라 하시는데, 바로 이 장면과 지상 생의 마지막 때인 십자가 위에서입니다. 공생활 중 어느 날에는, 예수께서 군중에게 둘러싸여 설교를 하고 계시는데 어머니와 그 친척들이 찾아옵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인간으로서 마리아보다 잘 실천한 분이 없다고 본다면 마리아는 예수님 개인의 어머니를 넘어서서 아버지의 뜻을 가장 잘 실천하는 교회의 어머니, 영적 어머니의 ‘여인’이었습니다.

정결예식용 돌항아리 여섯 개 역시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체결하기 전 준비를 갖춘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결하게 준비된 셋째 날 하느님은 시나이산에 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항아리는 아직도 완전에서 하나가 모자랍니다. 율법을 딱딱하게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은 우리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철저히 율법을 지켰던 율법학자들과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제 맹맹한 물 같은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은총과 진리’란 새로운 질서의 원천을 제공함으로써 맛좋은 신약의 술을 만드십니다. 인생이라는 삶의 잔치를 흥겹게 하는 그 술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옆구리에서 나온 물이요, 그 가는 곳마다 모든 사물이 생기를 얻는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린 물과 같은 것으로서 우리 삶에 기쁨과 생명을 주십니다. 또 그분은 은총과 진리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담는 술항아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제7일은 세례로 시작되었음에도 주일미사에 가는 것이 의무감에서라면 우리 마음은 아직 돌항아리입니다.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청합시다. 주님께서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믿음을 담고, 주님과의 혼인잔치 기쁨을 누리는 술항아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면 삶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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