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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내 고교 동창회 명예회원이 되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4 조회수757 추천수6 반대(0) 신고
             아내 고교 동창회 명예회원이 되다 
                           공주사대부고 동기 정영진 화백의 개인전에 다녀오면서 
    


 



▲ 정영진 화백의 그림들 중에서 이 작품을 아내가 가장 맘에 들어했다.  
ⓒ 지요하

지난달 25일(토) 모처럼 만에 아내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했다. 아내의 공주사대부고 15회 동기인 정영진 화백(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거주)의 여덟 번째 개인전이 서울 삼청동의 '갤러리 영'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곳에 가서 정 화백의 실물 작품들을 보려는 것이 이번 서울 나들이의 주목적이었다.

(일주일 전의 서울 나들이 얘기를 이제야 쓰게 되었다. 나는 본래 순발력이 약한 편인 데다가, 마감 일에 쫓기는 소설 작업 때문에 이 일을 앞당길 수가 없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날의 좋은 풍경들과 의미 있는 일들이 지금도 내 가슴에 감미로운 여운으로 남아 있기에 늦게라도 기록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달력에다가 표시를 해놓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의 고교 동기 중에 미술작가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일찍부터 미술작가 동창생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미안해했고, 2003년부터 고교 동기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그의 존재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을 다행스러워했다.

그동안 지방에서만 개인전을 가져온 그가 서울 '갤러리 영'의 초대전 형식으로 서울에서 처음 개인전을 갖게 된 것을 아내는 자기 일처럼 좋아했고, 그 전시회에 가서 그의 그림들을 보는 일을 매우 중대한 '의무'로 여기는 듯했다.

나는 '장롱 면허' 소지자인 마누라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느라고 마누라의 고교 동창 모임에 벌써 여러 번 동행을 한 덕에 이미 정영진 화백과도 구면이 되었고, 친분을 쌓아가고 있는 처지였다. 문학작가와 미술작가 사이이니 자연 여러 가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서로 동류의식 같은 친밀 지정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의 얼굴과 말소리에서 이미 순박하고도 진솔한 평화의 세계를 읽고 있었다. 온화하고도 정직한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그의 얼굴은 내가 즐겨 떠올려보고 싶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처지였다. 그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고, 그의 실물 작품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내심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의 서울 '갤러리 영' 전시회 소식을 반겨했고, 기꺼이 아내와 동행을 할 수 있었다. 가을 끄트머리의 화창한 날씨에 감사하며 운전을 했지만 서울까지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또 한번 지방에서 사는 핸디캡을 절감하며 일단 천안으로 갔다. 성황동의 복자골목, 딸아이가 고교 시절 3년 동안 자취 생활을 했던 원룸 앞에다 차를 놓고 천안역에서 열차(입석)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 정영진 화백의 그림들 중에서 나도 한 작품을 택해 작품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 지요하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택시를 타고 생전 처음 유서 깊은 동네 가회동을 구경하고(그 정도로 나는 촌뜨기다. 그런데 내 호기심과는 달리 가회동도 그다지 고풍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삼청동의 '갤러리 영'을 무난히 찾아갔다.

정 화백을 만나 축하 인사를 반갑게 건네고, '영 갤러리'의 1층과 2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우선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오늘 드디어 마누라의 고교 동창 정영진 화백의 실물 작품들을 보는구나. 앞으로 그를 대할 때는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 좀더 재미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조금은 엉뚱한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서울까지 와서 그림을 보는 일은 오늘이 처음이네. 전에 연극을 하나 보기 위해 일부러 서울을 온 적은 두어 번 있지만 그림을 보기 위해 서울을 온 건 정말 처음이야. 이것도 마누라 덕이니, 마누라에게 감사해야겠네.'

그런데 마누라는 내가 더 고마운 모양이었다. 전시회장에 나타나는 여자동창 남자동창들이 나를 알아보고 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웃음을 짓곤 했다. 마누라의 남자동창들 중에는 더러 아내를 동반한 이들이 있었지만 여자동창들은 몇 명밖에 오지 않았고, 남편을 동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롱 면허를 소지한 마누라 운전기사 노릇을 핑계 대고 마누라 동창 행사에 원근을 불문하고 매번 동반 참석하는 남편이 이 대한민국 땅에 나 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으나, 이미 이력이 붙을 대로 붙은 일이니, 외려 기분 좋은 일이었다.


▲ 왼쪽부터 정영진 화백, 고교 동창회 안병문 총무, 심상선 회장, 김봉기 장군(육군)  
ⓒ 지요하

우리 부부는 오후 4시 이전에 도착해서 충분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솟대'를 소재로 한 갖가지 입체설치작품들과 그림들을 하나하나 열중해서 볼 수 있었고, '갤러리 영'에서 만든 '산정별곡(山情別曲)'이라는 전시회 관련 책자 안에 수록되어 있는 임재광 미술평론가의 글 '푸른빛 희구(希求)의 그림'과 윤은경 시인의 글 '영원을 경작하는 블루(Blue'의 변주곡 -정영진의 작품세계'를 꼼꼼히 읽어서 처음 대하는 정영진 화백의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어느 정도 넓힐 수 있었다.

공주사대부고 15회 동기들은 정영진 화백의 개인전 기간(23∼29일) 중 25일 토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기로 한 모양이었다. 5시가 넘으면서 하나 둘 나타나더니 6시쯤에는 무려 40명 정도가 모였다. 공주사대부고 15회 동기들은 남녀 합해 182명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 40명 정도가 동창생 화가의 전시회장에 모였으니, 참으로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그 중에서 절반 정도는 서울권에서 사는 이들이고, 절반 정도는 공주, 부여, 대전, 대구, 태안 등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라고 했다. 또 그 중에서 3분의 2 정도는 이미 나와 구면인 이들이었다. 나는 초면인 이들과 인사를 나눌 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들은 '갤러리 영' 2층 전시실에서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심상선 동창회장(치과의사)의 축사에 이어 정영진 화백의 소개로 공주사대부고 후배라는 백인현 공주교대 미술교육과 교수와 최기성 공주사대 미술교육과 교수의 축사가 있었다. 윤은경 시인은 소감 발표 후에 정 화백의 그림들 중에 연꽃 그림이 많은 사실을 들며 시 '연꽃'을 낭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 화백의 요청에 따라 나도 간단히 축하의 말을 했다.


▲ 정영진 미술세계에 대해 소감을 말하는 윤은경 시인. 처녀같이 앳된 모습인데, 대학생 딸이 동행을 했다.  
ⓒ 지요하

전시실에서의 행사를 마친 그들은 인근에 있는 한식 음식점으로 옮겨가 저녁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 부부가 미처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몇 분의 의견을 들은 심상선 회장이 나를 세워놓고는 이런 말을 했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잘 알고 있겠습니다만, 여기 계신 이 분은 여자동창회 총무인 구갑회 동문의 남편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동안 우리 동창회를 위해 수고를 많이 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깊이 감사를 표하면서, 지요하 선생님을 우리 공주사대부고 제15회 동창회의 명예회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찬성하시면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40여 명 모든 동기들이 하나같이 박수로 화답했고, 크게 휘파람 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저희 동창회의 명예회원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자격이야 없지만, 큰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부로 지요하 선생님은 우리 공주사대부고 제15회 동창회의 명예회원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엄숙히 선포합니다."

그러자 또 한차례 큰 박수와 환호가 넓은 방안에 가득 찼다. 심 회장은 다시 말했다.

"그럼, 지 선생님에 대한 자세한 소개 말씀을 김명주 친구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명주씨는 의사이며 소설가인 사람이었다. 충남 부여에서 소아과의원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는 그는 1993년 나와 함께 '충남소설가협회'를 창립하여 동고동락하는 등 오래 인연을 나누어오고 있는 소설 동지였다.

그는 동창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과분한 말을 하여 오히려 나를 주눅들게 했다. 작가로서 별 뚜렷한 업적도 이루지 못하고 덧없이 늙어버린 내 처지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김명주 작가의 과분한 말을 평생의 '주문'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는 심상선 회장의 부탁에 따라 간단하게 인사말도 했다.

"마누라의 모교 동창회에 남편이 명예회원이 된 사례는 이 대한민국 땅에 흔치 않을 것 같고, 그만큼 영예로운 일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마누라 덕분에 좋으신 분들을 만나고 좋은 인연을 함께 나누며 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영광 못지 않게 큰 책무도 느낍니다. 앞으로 명예회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윤은경 시인의 시 '연꽃' 낭송을 들으며 숙연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정 화백과 고교 동창 친구들  
ⓒ 지요하

우리 부부는 9시쯤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즐거운 자리를 먼저 떠나는 것이 미안하고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용산역에서 9시 45분발 열차 표를 샀다. 언제 용산역으로 오게 될지 몰라 표를 예매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입석표였다. 하지만 우리는 입석표에 지정된 5호 차에 오른 다음 맨 끄트머리 빈 좌석에 무조건 앉고 보았다. 다행히 자리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나는 평택까지, 아내는 천안까지 앉아서 올 수 있었다.

천안역에서 내 차가 있는 복자골목을 향해 걷다가 우리는 복자여고 앞의 포장마차에 들렀다. 전에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나오는 딸아이를 마중하며 종종 들르곤 했던, 한 시절의 추억이 어려 있는 포장마차였다.

"이 포장마차에 꼭 일년만에 다시 왔군. 우리 딸과 같이 오지는 않았지만, 무지 반갑네. 다 당신 덕분이야."

어묵을 두 개씩 먹고, 11시 30분쯤 차에 올라 천안을 출발할 때 아내가 말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이 너무 고생하셔서…."
"난 당신이 고마워. 당신 덕분에 정영진 화백의 좋은 그림들을 볼 수 있었고, 공주사대부고 15회 동창회의 명예회원까지 되었으니…. 정말 마누라 모교 동창회에 명예회원이 된 사람은 이 대한민국 땅에서는 아마 나밖에 없을 걸."
"그럴 거예요. 난 그저 당신이 고마울 뿐이에요."
"그러나저러나 정 화백에게 미안해. 그림 한 점 사주지도 못하고, 그저 주변 애·경사에 부조하는 수준으로 적은 축의금 봉투만 주고 왔으니…. 내 형편상 그림을 살 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도 들고, 괜히 당신에게도 미안해지더군."

그밖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마누라와 나누며 나는 맑은 정신으로 즐겁게 심야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계룡산 기슭에 있는 정영진 화백의 화실 이름은 '산새도'이다. '산새도 머무는 곳'이라는 말을 줄여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화실 '산새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산 그늘 속살엔
당신의 흐르는 내

그토록 그리움이 아니라면
차마 고독을 모르고 살겠어

다시 살아도 긴 꿈은 아름다워라
문득 속죄의 바람 하나

산새도 떠나지 않는
아린 노래 한 소절 접는다.  


  2006-12-02 18:43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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