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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리사벳의 노래; 사랑의 언어로 통해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3 조회수699 추천수9 반대(0) 신고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루카 1,57-66)



<엘리사벳의 노래; 사랑의 언어로 통해야>


이제 막 제가 낳은 아기를 주님께 봉헌 합니다.

이 아이는 제게 주님의 은총입니다.

죄인 되어 숨어 지냈던 세월의 눈물이 한꺼번에 흐릅니다.

돌계집으로 손가락질 받던 제게 놀라운 은혜 주셨습니다.


40년간 없었던 달거리 폭포처럼 터져 나오던 날

너무 두려워 제 생애 마지막 날인줄 알았습니다.

날짜도 생생하여 구월하고도 십칠일.

그 날이 처음 여자 되는 날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성전 지성소 앞 분향 당번에 제비 뽑힌 즈카르야는

주님 향기에 취한 듯 놀란 가슴 안고 내게 돌아와서도

입이 얼어붙어 음음하기만 하고 손짓발짓뿐이니

평소 원로라 으쓱대던 몸태 다 어디가고 제겐 귀여워 보입니다.


사라의 웃음처럼 속으로 큭큭 터져 나오는 웃음 참을 수 없어

뒤돌아 입 가린 제 부끄러운 손을 기어이 잡아보는 낭군님. 

그의 입에서 웅얼대는 소리의 향기는 옅은 사향 내음,

뿌연 안개 되어 제 몸을 감싸 주었습니다.


배불러 오는 다섯 달 내내 소근 소근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

몸 정갈히 하고 고요히 앉아 외설고 낯선 것에서 숨었습니다.

꼼지락 발길질 하는 품세가 기운 센 사내아이이겠습니다.

모두 주님께서 제 치욕을 없애시려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뜻밖에 찾아온 주님의 연인인 제 사촌 마리아를

저보다 제 태내 아이가 먼저 즐거이 맞아 들였습니다.

그 아이 품새가 한눈에 보아도 홀몸이 아닌 듯하여

온몸으로 위로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제가 위로 받았습니다.


기쁨에 겨워 내지른 말마디 저는 이 세상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 싯귀 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모든 여인 중에 축복받으셨고,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주님께서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정숙과 겸손을 세세대대로 찬양할 것이며,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어머니로 받들어 질 것입니다.


마리아와 함께 지냈던 석 달 간은 어찌나 행복했던지 모릅니다.

사랑의 언어 잊어 벙어리 된 남편은 지나친 거룩함에 홀로

이 지구에 기도하러 어느 별에서 떨어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만 온갖 시중에 말벗되어 몸종인양 딸인 양 굴었습니다.


그녀와 대화할 때면 누가 언니인지 동생인지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여린듯 하다가도 일할 때는 씩씩한 힘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품새에는 깊은 침묵에 빠져

옆에 있던 모두가 꽃향기에 묻혀 지내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내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니 이제 저도 용감해졌습니다.

저를 어려움에서 구해주고 지켜줄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사람, 친척 모두 모여 아이 할례를 축하해주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얻은 아이라 그 이름만은 요한이라 지을 것입니다.


저도 이제 부터는 주님의 성령께서 이르시는 대로 외칠 것입니다.

나의 아이도 태내에서부터 소리쳐 외쳤듯이 평생 그러할 것입니다.

별나라에서 온줄 알았던 즈카르야도 이제야 저랑 말이 통합니다.

지구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니 모두가 놀라 주님을 찬양합니다.


두려움에 쌓인 이웃들은 아직도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저 소문으로만 내고 이야기 할 뿐 사랑의 언어를 모릅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묻기보다 스스로 

제 안에서 이 아이를 사랑의 언어로 키워야 할 것입니다.


내 낭군 즈카르야가 사랑의 언어를 내게 속삭여 줄 것이기에

이 아이는 언제라도 그 말을 배울 것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낳았지만 제 아이가 아니라 그분의 아이입니다.

첫 태를 뚫고 나온 아이이고 주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그분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돌려드릴 것입니다.

이젠 방긋 웃는 아이의 체온을 안아본 어미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게 가져다준 이 웃음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나의 기쁨은 오래도록 태를 열지 못한 여인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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