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3 조회수69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12월 23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He asked for a tablet and wrote, “John is his name,”
and all were amazed.
Immediately his mouth was opened, his tongue freed,
and he spoke blessing God.
(Lk.1,63-64)

 

제1독서 말라키 3,1-4.23-24

복음 루카 1,57-66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인도의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위대한 사랑을 갖고 작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들은 수녀님의 말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함으로써 그냥 계획의 차원에만 머무를 때가 참 많습니다. 즉, 사람들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위대한 일을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대부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로 이 계획의 실행이 좌절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봉사하는데 바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여건이 되지 않아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지요. 그러나 언젠가 크게 성공해서 여건이 괜찮아지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제 모든 삶을 다 바치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배고픈 사람들, 친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 자녀를 돌봐줄 보모가 필요한 어머니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한 거리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고, 관심을 쏟아야만 하는 사람들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수천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에는 관심을 갖지도 않으면서, 자기 삶을 온전히 봉사하겠다고 말만 하는 위대한 사랑을 외치곤 합니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좀 더 밝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맨 앞에 직접 나설 필요 또한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작은 친절들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소한 친절과 봉사조차 행동으로 옮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오실 주님을 준비한 인물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기 때문에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나는 오실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면서 오실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의 자리를 기쁘게 반깁니다.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바꾸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욕심이고 착각일 뿐인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리야는 천사 가브리엘의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통보를 믿지 않았기에 벙어리가 되었지만,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여서 다시 혀가 풀리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영화를 한 편 생각해보세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엑스트라가 대신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분명히 망할 것입니다. 엑스트라는 그 영화의 감초 역할만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엑스트라인 내가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한다면 가장 형편없는 3류 영화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하나의 배역을 맡겨주셨습니다. 그 배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면 예수님께서 주연, 연출, 각본, 감독까지 맡고 있는 영화가 다시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성공을 위해서 우리가 맡고 있는 배역, 이 세상에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가족과 함께 영화 한편 어때요?



사랑의 기도(J. 갈로의'사랑의 기도' 중에서)



연약함이 아닌 온유함
격한 내적 감정을 지배하는
사랑의 힘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스로 삼갈 줄 알고
이웃을 마음으로부터 받아 들이고
자유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웃의 작은 필요와 바람을 알아 채워주는
섬세함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When they came on the eighth day to circumcise the child,
they were going to call him Zechariah after his father,
but his mother said in reply,
“No. He will be called John.”
(Lk. 1,59-60)

 

 

 

 

Love Letter OST - Small Happiness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