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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장(勇將) 한니발 장군
작성자배봉균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0 조회수753 추천수7 반대(0) 신고

 

 

 

 지(智)와 용(勇)을 겸비한 덕장(德將) 스키피오(Scipio)  2


 

 

카르타고의 명장(名將) 한니발(Hannibal, BC 247-183)은 BC221년 26세의 젊은 나이

 

로 에스파냐(오늘날의 스페인) 주둔군(駐屯軍)의 총지휘관(總指揮官)이 되었습니

 

다. 알렉산더 大王의 사후(死後) 헬레니즘 세계(世界)가 분열(分裂)되어 있던 그

 

시기(時期), 카르타고와 로마는 지중해(地中海)의 패권(覇權)을 놓고 치열(熾烈)

 

하게 싸웠습니다. 카르타고는 BC 8세기 페니키아 人이 北 아프리카 튀니스 만(灣)에

 

건설(建設)한 도시국가(都市國家)인데, 로마 人들은 카르타고를 '페니키아'라는

 

의미의 라틴語로 '포에니'라고 불렀습니다. 카르타고와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고 마침내 시칠리아 섬에서 격돌(激突)했습니다. 제 1차 포에니 전쟁( BC 264-

 

241)이 일어난 것입니다. 카르타고에 비해 해군력(海軍力)이 약했으나 로마는 함대

 

(艦隊)에 신형장비(新型裝備)를 장착(裝着)하여 새로운 전술(戰術)을 선보임으로써

 

카르타고를 제압(制壓)하고 승리(勝利)를 거듭했습니다. 이 전쟁(戰爭)은 시칠리아

 

인근(隣近) 바다에서 23년간 계속(繼續)되었지만 결국(結局) 카르타고는 로마에

 

패(敗)해 거액(巨額)의 배상금(賠償金)을 지불(支拂)하고 시칠리아에서 완전(完全)

 

히 떠나는 조건(條件)으로 강화(講和)를 맺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6살의 어린

 

아이였던 한니발은 9살 되던 해에 아버지 하밀카르 장군(將軍)을 따라 에스파냐로

 

들어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로마에 대한 적개심(敵愾心)을 불태웠습니

 

다. 아버지가 죽고 에스파냐의 총사령관(總司令官)이 되자 20대의 젊은이였지만

 

한니발에게는 로마를 멸망(滅亡)시키겠다는 크나큰 야망(野望)이 있었습니다.

 

그는 에스파냐의 지배(支配)를 우선(優先) 공고(鞏固)히 해 놓고 여러 부족(部族)을

 

평정(平靜)한 뒤, BC 219년 드디어 로마를 향해 출병(出兵)합니다. 제 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의 시작(始作)이었습니다. 한니발은 해로(海路)를 택하지 않고

 

육로(陸路)를 택했습니다. 그는 피레네 산맥(山脈)을 넘어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니발 군대(軍隊)의 병력(兵力)은 보병(步兵)5만 명, 기병

 

(騎兵) 9천 명에 코끼리 37마리 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중 기병(騎兵) 9천 명은 세계

 

전사상(世界戰史上) 몽골 족(族)과 더불어 기마술(騎馬術)이 능(能)하고 가장 용맹

 

무쌍(勇猛無雙)하다는 아프리카 북부(北部) 누미디아의 잘 훈련(訓練)된 기병(騎兵)

 

이었습니다. 그들과 갈리아 지방(地方)의 겔트 족(族)들은 한니발의 용맹성(勇猛性)

 

과 카리스마에 압도(壓倒)되어 기꺼이 용병(傭兵)이 되고 귀중(貴重)한 정보(情報)

 

를 제공(提供)했습니다. 로마가 한니발의 진의(眞意)를 파악(把握)하지 못하고 시칠

 

리아, 아프리카, 에스파냐로 군대(軍隊)를 보내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사이

 

한니발의 군대는 론 江을 건너 알프스로 향했니다. 코끼리 부대를 포함(包含)한

 

대군(大軍)을 이끌고 눈 덮인 알프스 산맥(山脈)을 넘기로 작정(作定)한 것입니다.

 

추위와 눈사태와 싸우고, 곳곳의 고지(高地)에서 돌을 굴리며 공격(攻擊)하는

 

소규모(小規模) 갈리아 부족(部族)들과 싸우며 한니발은 보름만에 알프스를 넘었

 

니다. 일찍이 어느 장군(將軍)도 생각지 못하고, 해내지 못한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

 

일을 해낸 한니발은 어느 누구보다도 용맹(勇猛)스러운 용장(勇將)이었습니다.


 

              

               (다큐멘타리 필름과 네이버 백과사전, 오픈사전을 참조, 발췌하여 작성했습니다.)

 

 

 

 

 

 

 

 

 

                     지(智)와 용(勇)을 겸비한 덕장(德將) 스키피오(Scipio) 3로 계속 이어집니다.

 

              

Under the Double Eagle - John Philip Sousa
 
 
 
 

Under the Double Eagle - John Philip Sousa
 

 

 

 
 
장정원( (2005/05/09) : dizimon)
 
장정원( (2005/05/09) : 한니발역 dizimon)
 
장정원( (2005/05/09) : 카르타고 비르사언덕 박물관 성당 dizimon)
 
장정원( (2005/05/09) : 카르타고 언덕 dizimon)
 
장정원( (2005/05/09) : 한니발 dizimon)
 
 
 
Re : 한니발 편 - 보충자료(펌)
 
배봉균
 

 

 

 한니발의 애꾸 눈과 화가

 

 

고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눈이 하나밖에 없는 애꾸였다고 합니다. (전쟁 중

 

상처로 인하여) 하루는 그의 집으로 화가를 불러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

 

다. 화가는 한쪽 눈이 감긴 모습을 정직하게 그렸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그림을 본

 

한니발 장군은 대노했습니다. "왜 이렇게 병신 꼴로 그렸느냐!" 장군은 화가를 끌어

 

내어 목을 치라고 명했습니다. 그 화가는 그림 하나 그린 대가로 죽고 말았습니다.

 

장군은 다시 다른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앞서 화가의 죽은 사유

 

를 알고 온 화가는 한니발의 초상을 두 눈이 다 성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한니발 장군은 이번에도 대노했습니다. "내 눈이 어째서 둘이냐. 하나밖에 없는 눈이

 

네 눈에는 둘로 보인단 말이냐, 이건 내가 아니라 딴 사람이 아니냐! 괘씸한지고!"

 

이 화가도 역시 참수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불려와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생명을 부지했습니다. 이유는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도록 한니발의

 

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카다피 아들 한니발 파리서 또 말썽>
 
[연합뉴스 2005-02-04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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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외무부, 리비아에 공식 항의

(파리=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 지난해 9월 파리 시내에서 과속으로 단속됐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아들 한니발 카다피가 또 다시 파리에서 물의를 일으키자 프랑스 정부가 이번엔 리비아에 공식 항의했다.

프랑스 외무부의 세실 포조 디 보르고 부대변인은 3일 "한니발 카다피씨가 잇따라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이라크 당국에 불만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20대 후반의 한니발은 이번 주 초 프랑스 시내의 고급 호텔 두 곳에서 잇따라 싸움을 벌이는 소란을 피웠다. 1~2일 밤 사이에 벌어진 소란에서는 9㎜ 권총까지 꺼내 들었다 호텔 보안요원들에 의해 제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첫번째 소란에서 한 여성이 구타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한니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니발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2일 코펜하겐으로 갔다.

포조 디 보르고 대변인은 "프랑스의 승인을 받아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나 공식 방문 중인 사람에게만 외교 면책 특권이 있으나 한니발은 두 경우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한니발은 지난해 9월 말 파리 중심부 샹젤리제 도로에서 스포츠카로 시속 100㎞ 이상을 달리다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그의 경호원이 단속 경찰과 드잡이를 하다 주먹으로 때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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