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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두 가지 질문.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0 조회수590 추천수2 반대(0) 신고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 1,26-38)



  <두 가지 질문>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카1,34.마리아의 질문)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루카 1,18.즈카르야의 질문)


  마리아와 즈카르야는 모두 황당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전해 듣고서 질문했습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연히 솟아오르는 의문입니다. 저는 이 두 대목을 읽고 비슷한 두 질문에 어쩌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는지 궁금했습니다.

  한사람에겐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라면서 말을 할 수 없는 벌을 내리고, 또 한 사람에게는 친절히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라고 설명해 줍니다.


  도대체 두 질문에 어떤 차이가 있기에 이런 천양지차가 나는 대답이 나오는지 묵상거리가 되었습니다.

  루카저자는 대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를 즐겨합니다. 두 인물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즈카리야는 마리아에 비하여, 노인, 남자, 사제, 결혼한 가장, 재산이 있는 자, 원로로서 존경 받고 말발 서는 사람의 위치에 있습니다. 다만 그 부부는 의로웠으나 자식이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나이 어린 처녀, 약혼 중인 여자, 침착하고 소박한 성격 정도 밖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로도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질문하는 어감에 있어 보입니다.


  즈카르야의 질문을 그리스어 원어 느낌을 살려가며 제 나름대로 적어 봅니다. - 성경의 해석이 잘못되거나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저 나름대로의 묵상입니다. 양지하시길 바랍니다. -


“무엇에 의하여 이것을 알겠습니까?(믿겠습니까?) 저는 노인(원로)이고, 나의 여인(부인)은 세월과 함께 멀쩡히 (늙어)갑니다.”


  이 말의 뉘앙스는 천사가 한 말에 자신이 믿을 수 있게끔 표징을 보여 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원로급이고, 내 부인도 모든 괴로움 다 잊고 우아하게 늙어가고 있는데 뒤늦게 주책없게 그런 일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느낌이 실려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남자들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루카저자는 24,25절에다가 여성인 엘리사벳의 심정을 예리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즈카르야의 질문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의 질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질문에 꾸짖으실 뿐 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 질문에 더 이상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이 담긴 말을 내뱉지 못하게 벙어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모든 결과가 확연히 드러나기까지 인간은 침묵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리아의 질문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남녀가 짝을 지어 부부로 살고 자식을 낳아 번성하도록 질서를 세우셨습니다.(창세 1,27;2,24) 그 질서를 잘 알고 있고 충실히 따르려고 하는 마리아로서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자신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일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다른 것 아니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 질문에 가브리엘 천사는 합당한 설명을 해주어 이해시킬 필요가 생겼습니다. 옛 창조의 질서를 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 질서를 세우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아듣게 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창조라는 설명입니다.


이에 마리아는 그 말씀을 다 알아 듣고서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순종의 표시를 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모님의 지혜는 겸손과 순종, 기다림과 새겨들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 전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모 마리아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이며 공경과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 것입니다.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부탁하시는 명령입니다. 그 누가 감히 이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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