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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 된 순명만이 권위를/신앙의 해[6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5 조회수381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림 : [이탈리아] 아시시 성녀 클라라 대성당 주변 풍경

우리가 한평생을 살면서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음은 커다란 축복이다.
우리 시대에 김수환 추기경님을 뵐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인연이며 큰 축복이라 생각된다.
그분을 가까이 뵌 분의 추억담이다.

‘추기경님은 경당에서 늘 밤늦게까지 기도하시었다.
저도 기도하러 가끔 경당에 올라갔다.
그때마다 저는 무심코 신발을 벗어 놓고 경당에 들어갔는데,
기도가 끝나 신발을 신으려 할 때면 언제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추기경님이 나가시면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신 것이다.
젊은 후배에게 말없는 가르침이었다.
이는 몸에 겸손이 배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일게다.
진정한 권위는 바로 허리 굽혀 몸으로 가르치는 겸손에서 우러나온다고 본다. 
 

예수님 말씀에도 쾌나 권위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개 권위라는 말을 부정적이리라.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권위는 좋은 의미이다.
‘예수님께는 권위가 있었다.’는 표현이 곧잘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르 1,21-22).’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권위’는 좋으나, ‘권위적’인 것은 좋지 않다.
예수님께는 권위가 있었지만, 그분께서는 권위적이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겸손하셨다.
하느님 앞에서는 철부지 어린이처럼 기도하시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을 훈계하시되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오늘날은 ‘권위적인’ 사람이 많아서 문제이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권위가 실추되어서
기억조차 싫은 추태 끝에 꼴사납게 시리 낭패가 생기기도 하더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권위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학자의 권위는 논리적이면서 근거 있는 지식에서 나올 게다.
유능한 기술자가의 권위는 오랜 경험과 풍부한 능력에서 오리라.
그렇다면 예수님의 것은 어디에서?
그분의 권위는 하느님 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따르는 겸손 된 순종에서 나왔다는 생각이다.

그렇다.
우리도 나름 인정받고자하는 권위를 갖고자 일말의 희망을 갖는다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위를 존중하고 이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야 하리라.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사람들이 권위를 느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지혜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일 게다.
그분은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것을 회피하지 말고 긍정적인 의미로 승화시켜
그 속박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치셨다. 
 

이렇게 그분의 가르침은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규정을 뛰어넘어 우리의 죄의식을 훌훌 터는 새로운 해방을 안기는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의 설교는 한마디로 영혼의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율법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정신을 올바로 실천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다.
곧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시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해방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제껏 무엇을, 아니 누구를 섬겼는가?
무엇을 청했나?
부질없었던 적은 없었을까?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신다.
모든 것을 그분께서 주관하신다.
그분을 섬기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우리가 미래를 몰라서 삶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희망을 두지 않아서 불안한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주신 이유는,
그분께서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새롭게 창조해 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런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미래는 설렘과 기다림의 세계로 다가올 게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순명의 마음으로 겸손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삶만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이는 남을 향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일게다.
이런 삶에서 진정한 권위가 생겨난다.
이게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 보여주신
허리 굽혀 몸으로 가르치는 겸손에서 묻어나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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