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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 십자가의 예수님을 응시하면...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0 조회수381 추천수0 반대(0) 신고

< 십자가의 예수님... >

 
성당의 제대 주변은 참으로 거룩 합니다.

세상의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몸부림의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 안도의 마음, 이상한 생각 등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면서

빨리 안정을 찾기 위해 엄숙해 집니다.

그  분위기는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 잘 아실 것입니다.

 

십자가상 예수님은 그 누가 뭐라해도 분명 '고통' 을 연상하게 합니다.

 

12년전 직장의 파산으로 힘들어하던 어느 날

성당에서 어느 노 신부님의 확신에 찬 강론을 들었던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 누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뒤에 서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서야 할 줄은 단 한곳!! 고통의 예수님께로다.
 
  고통이 답이다. "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일반 교회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부활하여 승천하신 뒤의 십자가를 걸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뒤의 활동을 더 중요하게 여긴 다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 이후 보다 살아생전의 모습을 더 중요시 하는 천주교 입니다.

현실의 처세를 중시하는 유교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의미가 전혀 다릅

니다.

천주교는 일단 외형적으로 '고통'을 웅변 합니다.

 

고통에 대한 묵상을 할 때 잘 떠오르는 것이 대표적으로

어릴 때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불교교리 입니다.

인생이란 '고해의 바다' 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고해' 라는 부분이 우리말로 번역이 잘못 되어서 '고해'가 아니라 '무상'(無常)

이라고 주장하시는
외국 스님도 계시지만...)

어쨋든 세상을 살다보면 왜 이렇게 '아픔'이 많은 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해산한 여인은 아기를 보고 고통을 잊는다 하였습니다.

저는 여성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힘들다는)군대를 갔다온 남자로서 이 말씀의 의미를 어느정도 짐작 합니다.

 

'노력없이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도둑질 미수'입니다.

악마의 속임수로 인류가 고통의 '참된' 본질까지 거부하려고 애쓴다면

예수님은 또다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채로 승천해야 하는 일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헤프닝이 발생 하지 않게 미연에 방지 하려면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볼 때

그 모습에서 우리의 아픔을 투영 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상 예수님과 도데체 다를 것이 무어 있단 말입니까?

누구나 다  죄라는 대못 세개로  세상이란 십자가에 간신히 붙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옆구리를 찌를 창도 이미 저만치 준비되어있는 것 안 보이십니까?


" 아니다. 난 하느님의 축복만 쏙쏙 받고 산다.

  내가 잘되는 것 자체가 남이 잘 되는 것이다.

  고통은 전혀 없이 산다. " 


이런 분께 제가 감히 말씀 드립니다.

 
 " 하느님은 화도 내실 줄 압니다.

   남에게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잘 못되는 사람입니다.

   고통이 전혀 없다고요? 그렇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불행의 그늘에서 해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서로의 불행을 이해 하고 서로 위로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진정한

축복이라는 뜻이 됩니다.


아파하는 이웃을 보고 고소하게 느낄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해야 진정 행복 합니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은 악마의 유혹입니다.

나만 괜챦기 위해 이 사회에서 더 더 악한 甲이 되고자 동분서주 할 때

그런 우리를 위하여 가장 처절한 乙이 되신 십자가상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보다 약한 乙을 위해 甲甲한 이 마음을 벗어던질 용기를 언젠간 내야 합니다

 

부부도 신혼기간이 지나서 진정한 일치를 이루려면 행복감 보다도 서로의 아픔과 고통

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느님과 인간도 마찬가지 일 거라 생각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십자가에 달리신 고통의 예수님과 함께 이웃의 아픔

과 고통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곧 하느님과 이웃과 내가 영원히 일치되는 순간임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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