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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06년 12월 17일 다해 (자)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작성자이순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7 조회수636 추천수1 반대(0) 신고


♡ 2006년 12월 17일 다해 (자)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 Luke 3,10-18


10. 그때에 군중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 And the crowds asked him, "What then should we do ?"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1. He said to them in reply,
"Whoever has two cloaks should share with the person who has none.
And whoever has food should do likewise."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자,
12. Even tax collectors came to be baptized and they said to him,
"Teacher, what should we do?"

13 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13. He answered them, "Stop collecting more than what is prescribed."

14 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14. Soldiers also asked him, "And what is it that we should do?"
He told them, "Do not practice extortion, do not falsely accuse anyone,
and be satisfied with your wages."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5. Now the people were filled with expectation, and all were asking in their hearts
whether John might be the Messiah.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6. John answered them all, saying,
"I am baptizing you with water, but one mightier than I is coming.
I am not worthy to loosen the thongs of his sandals.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fire.

17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17. His winnowing fan is in his hand to clear his threshing floor
and to gather the wheat into his barn, but the chaff he will burn with unquenchable fire."

18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18. Exhorting them in many other ways, he preached good news to the people.


주님의 말씀입니다. .............. This is the Gospel of the Lord.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Praise to you Lord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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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묵상] 2006년 12월 17일 다해 (자)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 루카 3,10-18 )

항상 기뻐하십시오


오늘의 전례는 모두가 ‘기쁨’에의 초대의 내용이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필립 4,4)라는 기뻐해야 하는 내용이 두 독서에서 강조되고 있고
복음에서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루가 3,10)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는
세례자 요한의 권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하느님은 마음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복음을 선포”(루가 3,18절)하고 있다.
이러한 기쁨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기쁨의 주일’, 혹은 ‘장미주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날 우리는 또한 우리보다 어렵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생각하는 자선주일이기도 하다.

제1독서 : 스바 3,14-17 : 주님께서 너를 보고 기뻐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1독서에서는 이미 기쁨의 분위기로 들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내적인 쇄신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원수인 사탄에게 끌려가 죄의 노예생활을 하던 것으로부터
하느님의 전(예루살렘)인 하느님의 뜻으로 되돌아
오는 것 자체가 구원
이라고 하였다.
이같이 우리에게 오신 야훼께서 ‘당신 백성을 벌하던 자들을 몰아내시고’ ‘원수들을 쫓아내시어’(15절)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구원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17절).
그리고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에서는 이분을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하고 있다(마태 1,21).
그러므로 기쁨의 동기는 하느님께서 항구히 당신 백성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을 도와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데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요한 1,14) 강생의 신비에서 입증된다.
바로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더 훌륭한 분에 대해 말하고 그분의 오심에 대하여 준비시키고 있다.

복음: 루카 3,10-18: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복음에서는 기쁨이라는 주제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세례자 요한은 엄격한 권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즉 오시는 분은 세례자 요한보다 ‘더 훌륭한 분’(16절)으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16절)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구원을 베푸시는 그분을 맞이하는 것이 기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17절) 심판하시는 ‘심판관’이시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심판이란 말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야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
이다(참조: 요한 3,17).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엄한 윤리적인 경고를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은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조그마한 일들 안에 그리고 많든 적든 우리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능력 속에 있다
고 한다.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11절). 군인이든 세리이든 어떤 사람이건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행동하느냐, 특히 사랑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매일 행동하고
말하는 가운데 항상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고 가르침으로써 마음을 밝혀주고 있다.

“회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매 순간의 생활에서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드러냄으로써 순수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이다.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무슨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며 활동하는
그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
을 아는 것이다. 즉 그분의 대림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제2독서: 필립 4,4-7: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이 기쁨이라는 주제는 2독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필립비서는 처음부터 함께 사는 기쁨, 복음을 전하는데 협력하는 기쁨, 그리고 믿음에 관한 기쁨
등에
대한 주제가 계속 이어진다(필립 1,4.18.25; 2,2.17.18.28.29; 3,1; 4,1.4,10 참조).
그리고 여기에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5절) 때문에 우리의 삶의 모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오심’이 내가 당하는 고통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통’안에 이미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고통 중에 있는 바로 그 때가 내 옆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고통과 궁핍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우리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뢸 때”(6절),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7절)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정신적 긴장과
고통과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육체의 본능적 거부반응을 진정시켜 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쉽게 얻어지는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극적인 사건이나 고통을 통해 그리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자신을 잊어버릴 줄 아는 능력에서 생겨난다.
특히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 때를 바로 은총의 때로 체험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가 은총의 때이기 때문에
고통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례를 받고 성당에는 다닌다고 하여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다는
말만 한다.
성당에서 또 피정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강론을 많이 듣는다고 하여도 그래서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을 온통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해도 구체적인 나의 삶 속에서 그것이 의미를 갖고 실천되지 못하면 우리의
귀는 한없이 수준이 높아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기쁨을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다.
기쁨이나 행복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줄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이 만들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항상 기쁨을 만들려 노력하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기쁨은 기도이고 굳셈이고 사랑이며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기쁨으로 우리는 생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기쁘게 베푸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기쁘게 베푸는 분은 더 많이 베푸십시오.
하느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의 표시의 방법은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은 마음이 사랑으로 타오를 때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망각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슬픔도 여러분 안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 아멘 ♡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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