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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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6 조회수61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12월 16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Elijah will indeed come and restore all things;
but I tell you that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ey did not recognize him but did to him whatever they pleased.
So also will the Son of Man suffer at their hands.”
(Mt.17,11-12)

 

제1독서 집회서 48,1-4.9-11

복음 마태오 17,10-13

 

사제서품을 받고서 처음으로 보좌신부 생활을 할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한 새벽 3시쯤 전화벨이 신나게 울립니다. 지금이야 그 시간에 벌써 일어나 있겠지만, 그때만 해도 한참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었지요. 아무튼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신부님, 사실 저는 지금 자살하려고 합니다. 한 달 동안 수면제를 모았거든요. 그리고 이 수면제를 먹고서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나려 합니다. 그런데 아까 낮 미사 때 뵈었던 신부님이 생각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신부님과 마지막으로 대화하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잠이 확 달아나더군요. 지금 죽겠다고 하니 어떻게 긴장이 안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분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으로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뒤, 전화를 끊게 되었지요.

너무나 걱정되었습니다. “다시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말 한 마디로 상대방의 삶을 바꿀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혹시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저의 말을 되새겨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신부님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부님들의 기도를 청한다는 부탁과 함께 말이지요. 그런데 신부님들께서 “너 이제 큰 일 났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있어. 죽겠다고 하면서 신부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아마 네가 통화했던 그 사람은 너 잠 못 자게 새벽에만 전화할꺼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스토커로 인해 시달릴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에요.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과 함께 매일 그 시간이면 그런 전화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분께서는 며칠 뒤, 저를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어요.

“신부님의 말씀 듣고서 다시 살기로 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도 저의 말을 다 들어주셔서요.”

만약 제가 신부님들의 이야기를 미리 듣고서, “왜 사람 잠 못 자게 이 시간에 전화하시는거에요.”라고 화를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로 나의 말 한 마디, 나의 행동 하나가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 쉽게 말을 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너무나 쉽게 행동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고 계신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이천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곁에 계신 주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를 보이는 나의 뜻대로만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게 했을까요? 이제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은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끝까지 들어줍시다.



 
자신만의 길(박성철 '행복한 아침을 여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뉴턴은 인간들의 남을 부러워하는 속성, 자신의 길의 소중함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두 명의 천사가 천국에서 세상으로 파견되었다고 합시다. 한 천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되고 한 천사는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되었다고 합시다. 여기서 인간 세상과 다른 점이 한 가지 발견됩니다. 청소부가 된 천사는 결코 왕이 된 천사와 자신의 직업을 바꾸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지요.」

나무는 나무다운 삶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잎이 무성한 나무는 그 모습대로 빛나고 앙상한 나무 또한 잎이 무성한 나무옆에 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울창하게 하늘로 솟고 작은 나무는 작은 아름다움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제각기 사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떤 일을 하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 모습까지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자신만의 색깔로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삶을 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 최고의 성공은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니까요.

 

 

I Have Loved You For A Thousand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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