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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세상 다 산 얼굴로ㅣ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5 조회수91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12월 15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오 11,16-17)

 

 “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who sit in marketplaces

and call to one an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mourn.’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예언자와 주님을 알아보기를 포기한 이 세대를 걱정하신다. 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진리와 긍정적인 모습을 보아도 왜곡되게 받아들일 뿐이다


 ☆☆☆


늘 부정적인 사람은 아무리 밝은 곳에서도 어두운 구석을 찾아내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은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한 줄기 희미한 불빛을 찾아냅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우리의 마음은 텔레비전과 같아서 수없이 많은 채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채널들은 크게 긍정적 채널과 부정적 채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가 긍정적 채널에 자주 자신을 고정시킬수록 평화와 행복감을 더 많이 얻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채널은 용서, 사랑, 감사,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로서 우리가 결국 어떤 채널을 자주 트는지에 따라 자신의 감정 습관도 함께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요한 세례자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단 부정적으로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엄격한 요한 세례자의 모습이나 관대한 주님의 모습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세상 다 산 얼굴로>

-양승국신부-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거나 아주 기분 나쁜 일을 겪었을 때, 혹은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누구를 찾아 갑니까?


가장 만만한 친구, 있는 말, 없는 말 다 털어놓은 수 있는 편안한 친구를 찾아가지요. 그 황당함, 그 억울함을 꾸역꾸역 털어놓습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 내가 지금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내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털어놓습니다.


그럴 때 친구로서 중요한 자세는 진지한 경청입니다. 깊은 공감입니다. 연민의 마음입니다. 함께 괴로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치유가 됩니다.


“저런, 그래 얼마나 힘들겠니?”


그러나 간혹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알았어, 이제 그만해. 나도 그 정도는 다 겪었어.”


이야기 듣기에 지쳐 딴전을 피우거나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세주께서 오셨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는 유다인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십니다. 그 고대하던 메시아께서 드디어 자신들의 목전에 나타나셨는데, 소 닭 보듯이 심드렁한 얼굴인 유다인들의 무감각함에 혀를 내두르십니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강의나 강론, 수업을 들어갈 때 가장 괴로운 일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학생들이나 청중들, 신자들의 냉랭한 얼굴입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한번 해보려고 ‘생쑈’를 다하지만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집니다. 그럴 때 등에서는 식은땀이 마구 흐릅니다. 괜히 왔구나, 하는 마음에 빨리 이 시간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적극성입니다. 능동성입니다. 협조적인 자세입니다. 그 크신 하느님께서 미약한 우리들을 찾아주시는 데, 감사하면서, 행복해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그분의 방문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서, 매일의 작은 체험들을 통해서, 매일의 관계와 만남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시는데, 그저 그런 얼굴로, 아무런 표정 없는 냉담한 얼굴로, 세상 다 산 얼굴로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복음성가] 구원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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