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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큰 인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3 조회수578 추천수3 반대(0) 신고

<더 큰 인물>(마태 11,11-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더 크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고 하였으니까 인류 역사상 큰 인물이 많이 있지만 모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못된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사람치고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모든 사람은 다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이 가장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마도 일반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신앙인들도 세례자 요한이 그렇게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유독 예수님만이 세례자 요한을 큰 인물로 평가하고 계시다. 이것을 사실로 믿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사람을 보는 것과 예수님이 보는 방식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세례자 요한을 그렇게 큰 인물이라고 평가하시면서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삶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두고 이렇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위대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가?

 

결국 이 말씀은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과 하늘 나라의 사람과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상대조차 못된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씀하셨듯이 "금은 금이요, 은은 은이로다." 즉 금은 금이지 은이 될 수 없고 은은 아무리 많아도 은이지 금이 될 수 없다.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과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은메달이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한 개만한 가치가 없다. 서로 우위를 가릴 수 있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하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요한 3,6)
  
세례자 요한도 자기의 한계를 분명히 밝혔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르1,7-8)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즉 대통령, 회장님 등이라 하더라도 영으로 태어난 사람보다는 위대하지 않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위대하다고 하는 그 기준은 이 세상의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에 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란 육적인 인간을 말하는 것이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란 영으로 새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즉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하늘 나라에서 가장 하찮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더 위대하다. 즉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가장 작은 일보다는 훨씬 위대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떠들어 대는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도 복음적인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다.


 

자기를 위해서 좋은 차를 타고 화려한 옷을 입고 귀금속을 달고 다닌다 하더라도,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며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 보는 등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일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하다.


다시 말해서 육적인 일은 또 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일 또는 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위대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일반 사람과 하나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서도 하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똑같이 육적인 것을 영적인 것보다 더 위대하다고 하다고 육적인 일을 위해서 하느님의 일 즉 하늘 나라에서 실천해야할 사랑과 복음적인 가치를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하늘 나라의 것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위대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인 괴테는 "위대한 것을 위대하다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야만이다."라고 말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마태 13,17)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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