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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4) 나도 한 번 싼타가 되고 싶다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3 조회수80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며칠전 정기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전철을 타려고 지하도를 걷는데, 갈 때는 안보이던 할아버지가 신문지를 앞에 깔아놓고 앉아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지 두 다리를 쭉 뻗고서 차가운 날바닥에 앉아 있는 야위어 허약해보이는 노인은 팔십이 훨씬 넘어 구십 살에 가까워보였다.  신문지에는 낱개로 놓여있는 껌 몇 개와 백원짜리 동전이 십여 개 깔려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버스카드와 핸드폰밖에 없었다.

가방에서 천 원짜리 한장을 간신히 찾아쥐고 노인 앞으로 갔다.

허리를 구부리고 엉거주춤 앉아 말을 건넸다.

"이 껌 파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보일락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머리위에서 동전 두 개가 쨍그렁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올려다 보니 칠십은 넘은 듯한 영감이 뻣뻣이 선채 그러고 있었다.

 

무슨 짓이에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순간 참았다.

아마 그 영감님도 나이가 들어 허리가 아프거나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펀뜩 들어서였다.

 

천 원을 신문지 위에 놓고 일어서는데 노인이 뭐라고 뒤에서 웅얼거린다.

아마 껌을 가져가라는 소리일테지만 그냥 손을 흔들고 왔다.

공교롭게도 천 원짜리가 한 장밖에 없었던 게 너무 아쉬웠다.

그냥 만 원 한 장을 주고 올걸 하는 생각은 계속 머리속에서 맴돌면서도 몸은 그냥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음 속이 참 복잡했다.

왜 이 사회는 저렇게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이 많을까?

왜 그리 불공평할까?

잘사는 사람은 너무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당장 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점점 더 만 원짜리 한 장을 못주고 온 자신이 참 안달맞기도 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지하도의 곳곳 계단에는 그날 따라 유난히  털썩 주저앉아 있는 노인들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올 때 보면 종로4가쯤에 있는 공원엔 늘 노인들로 만원이었다.

저녁때인지라 아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전철을 타려고 온 노인들인 것 같다.

그 모습들을 보니 왠지 답답하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어릴적에 읽었던 책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유한 장교의 딸이 갑자기 부친이 죽은 후에 고아가 되어 겪는 이야기였는데, 아마 주인공 이름이 세라였던 것 같다.

사립학교에서 공주처럼 대우받으며 지내던 소녀가 어느 날 고아가 되자 여자교장은 그동안 못받은 학비와 기숙사비 대신 심부름꾼으로 혹독하게 부려 먹는다.

다락방은 춥고 쥐들이 나온다.

하인들에게도 구박받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소녀는 고운 심성을 잃지 않고 쥐들과 대화하고 어린 하녀와도 친하게 지낸다.

 

어느 비오는 추운 날, 물이 스며드는 신을 신고 심부름 갔다오다가 길바닥에서 은화 한닢을 줍는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파 바로 앞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서 은화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빵집 아줌마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 은화는 네가 주운 것이니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소녀는 그 돈으로 빵 몇 개를 사들고 나오다가 마침 길가에서 맨발로 떨고 서있는 거지소녀를 보고 그 빵을 그 아이에게 몽땅 주고 만다.

 

배고픈 배를 안고 걸어가는 소녀가 그때 중얼거린 말이 아마도 "난 참을 수 있어, 저애가 더 배고프니까 빵은 저애가 먹어야 해." 였을 것이다.

빵집 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와 허겁지겁 빵을 먹는 거지아이에게 묻는다.

빵을 몇개 주었냐고...

그리고 나서 "다 주었네! 그 애도 무척 배고파 보이던데...." 하면서 멀어져가는 세라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 하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라에게 감동 받은 빵집 아줌마는 그날로 거지아이에게 빵집에서 일하도록 한다.

 

다락방 건너 집에는 부자아저씨가 묵고 있었는데, 어린 세라가 힘들게 오가는 모습을 눈여겨 보다가 인도인인 하인을 시켜 지붕을 타고 그 다락방에 천사의 사랑을 만든다. 소녀가 쥐와 대화하는 모습을 엿보기도 하고 어린 하녀와 대화하는 모습도 지켜보다가 소녀가 꿈꾸는 환상의 세계를 그대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소녀가 하루종일 심부름가고 청소하는 사이에 다람쥐처럼 민첩한 인도인을 시켜 소녀가 전날 대화하던 꿈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이루어 놓는 것이다.

 

난롯불이 없는 방이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면서도,

 

"지금 난 따뜻하고 폭신한 양털이불을 덮고 있어."

 

배가 몹시고파 잠이 오지 않으면,

 

"지금 난 맛있는 푸딩에 따끈한 스프에 달콤한 쿠키를 먹고 있어."

"따끈하고 향기로운 차도 마시면서...."

"그렇게 상상하면 덜 춥고 덜 배고프고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잖아!"

 

그렇게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요술장이처럼 모두 이루어졌다.

 

딱딱한 침대엔 폭신하고 따뜻한 양털이불을, 난로는 따뜻하게 불을 피우고, 그 위에선 차주전자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끓고, 조그만 탁자엔 푸딩과 따끈한 스프와 달콤한 쿠키를 차려놓는다.

지칠대로 지친 소녀가 다락방에 올라왔을 때 그 모든 광경은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행복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 아저씨는 세라 부친이 전재산을 투자했던 다이아몬드 광산의 주인이었다. 그는 죽은 친구의 딸인 세라를 찾고 있었는데, 슬픔에 빠져있던 그의 눈에 비친 소녀가 가여운 마음에 꿈속의 공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고 아마 그 아저씨가 소녀에겐 싼타 클로스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 소설은 <소공녀>라는 세계명작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진다.

 

누구에겐가 따뜻함을 줄 수 있다면 그런 사랑의 온정을 줄 수 있다면 자기 자신도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재벌들은 연말이나 무슨 재해가 발생하면 수억씩 또는 수십억씩 거금을 희사하고 기탁한다.

그러나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단 한사람에게라도 관심을 가져주고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단 한사람에게만이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따뜻한 사랑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훈훈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금년 성탄엔 누구에겐가 단 한사람에게만이라도 싼타가 되고 싶다.

며칠 후 다시 병원 가는 길에 그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동전 몇 닢을 기다리고 있는 그 할아버지에게 싼타가 되고 싶다.

그 근처엔 따끈한 빵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던컨도너츠집은 알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빵은 아니라도 될수 있으면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서 노인이 드시기 좋은 빵과 뜨거운 자판기 차 한잔이라도 뽑아다 드리면서 어설픈 싼타라도 한번 되어보고 싶어진다.

 

싼타가 별것인가!

한순간만이라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다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따끈한 빵이 되어 주고, 추운 사람에게 따끈한 차 한 잔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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