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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덕(聖德)의 잣대는 사랑 ----- 2006.12.13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3 조회수619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2.13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

 

이사35,1-4c.5-6.10 1코린7,25-40 루카11,33-36

                                                      

 

 

 

 

성덕(聖德)의 잣대는 사랑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이런 것이라 합니다.

 
“인생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헛된 욕심과 경쟁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아진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 그들은

인생이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행복해지는 것뿐, 그게 다라고 입을 모아 전합니다.


이래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할 때  초연한 자유요, 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하느님 사랑보다 더 좋은 죽음에 대한 준비도 없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무수한 성인들의 삶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세상과 그 영화를 버렸도다.”


오늘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 독서의 기도

두 번째 후렴이었습니다.

 

이어 잘 아시는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22,37).


그렇습니다.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성덕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물도 사랑을 끄지 못하고 강물도 이를 덮지 못합니다.

사람이 그 온 재산을 다주고 사랑을 사려고 해도 멸시를 받습니다(아가8,7).

 

하느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영광을, 하느님의 영화를 보게 되어

광야 같은 마음에 저절로 무수히 피어나는 꽃 같은 기쁨입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할 때 일어나는 기적을

이사야 예언자는 참으로 실감나게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살아지리라.”


죄 없어 깨끗한 마음이 아니라,

열렬한 하느님 사랑 있어 깨끗한 마음입니다.

 

맑고 밝은 마음 있어, 맑고 밝은 눈이요, 맑고 밝은 몸입니다.
어린이들이 눈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마음과 몸이 깨끗하다는 이야기이겠습니다.

 

마음과 눈과 몸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요.

하여 ‘사랑을 하며는 얼굴도 예뻐진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눈은 마음의 거울’이란 말도 있듯이,

마음만 아니라 몸의 상태까지 거울처럼 보여주는 눈입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는 몸도 어둡다.”


마음이 어두울 때는 눈도 몸도 어둡기 마련이며

온갖 병들도 이 어두움과 더불어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살기위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맑고 밝은 마음과 눈, 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위해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태양 빛에 저절로 사라지는 밤의 어둠이듯이

하느님 사랑 빛에 저절로 사라지는 마음과 몸의 어둠입니다.

 

눈에 보이는 허상과도 같은 소유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몸과 마음의 맑고 밝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억울한 일인지요!


기혼이냐 미혼이냐는 아무런 문제가 못됩니다.

다만 갈리지 않은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면 만사 해결입니다.

 

사람들 서로간의 갈등들도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서로 하느님께 방향을 같이하다 보면

저절로 해소되어 일치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열렬한 하느님 사랑만이 세상으로부터 진정 우리를 초연하고 자유롭게 하여

바오로가 권고대로 살 수 있게 합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참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분도 성인의 간곡한 당부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전 존재로 사랑할 때

맑고 밝은 마음과 몸, 눈으로 아름답게,

초연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매일의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를 샘솟는 ‘사랑의 우물’이 되어 살게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아름다운 시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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