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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놀라우신 주님을 섬기며 <2> / 사람을 끄는 거룩함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2 조회수712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람을 끄는 거룩함

 

가타리나는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신비 체험을 했고, 이것이 이후 그녀의 삶을 방향 짓는 지침이 되었다. 아무 말씀 없이 그저 웃으시며 그녀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는 그리스도를 뵈었던 것이다.

 

밝고 명랑한 소녀는 불가항력적으로 여기에 이끌려, 예수님을 따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나서 바로, 가타리나는 기도 중에 홀로 예수님을 뵐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복닥거리는 가정 분위기 속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결혼 준비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의 이런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팽팽한 긴장감이 집안을 감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가족들에게 그녀를 편히 내버려두라고 했다.

 

열여서 살이 되던 즈음, 가타리나는 도미니코 수도회 재속회에 입회했고 4년간 집에서 기도와 참회를 하며 지냈다. 이런 생활은 그녀가 다시 환시 중에 예수님의 모습을 뵈면서 끝이 났는데, 예수님은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사양하며 그녀에게 밖으로 나가 도시의 삶 속에서 활동적으로 살 것을 권고했다.

 

가타리나는 몇 년간의 칩거 생활로 사람들 낯을 많이 가리게 되어 이런 생활이 힘들었지만, 세상으로 나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은 머지않아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픈 이들을 간호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많은 이들을 회심시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또한 병자들에게 봉사하는 한편으로 저녁마다 친구들을 모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네의 화젯거리에는 조용하고 무관심하다가도 하느님 얘기가 나오면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에나의 젊은이들은 밤늦도록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적이 종종 있었고, 그녀의 타오르는 사랑과 경이로운 통찰력에 매료되었다.

 

가타리나를 둘러싸고 기적에 관한 소문이 무성해졌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조언을 얻으려고 그녀를 찾았다. 머지않아 그녀는 군중 앞에서 설교하기에 이르렀고, 그녀가 전하는 말은 그녀의 남다른 자비와 아픈 이들을 향한 열정으로 더욱 빛이 났다.(스무몇 살의 마더 데레사를 상상해 보라!)

 

그 결과, 일단의 추종자들이 이 젊은 여인, 즉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며 거룩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가타리나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는 나이가 꽤 지긋하고 보다 저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교황의 조언자

 

그녀의 명성이 시에나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교육받은 적도 없는 이 젊은 여인은 교회 최고 수준의 중재자요 조정자가 되었다. 1374년경에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가타리나에게 자신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청하면서 그녀의 새로운 역할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은 실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로서, 교황의 '바빌론 유수' 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던 때였다.

 

수십 년 전, 프랑스의 한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잇따른 몇몇 사건들로 인해 로마로 들어가는 것이 지연되고 어려워지자, 아예 남부 프랑스 도시 아비뇽에 교황청을 설치했다.

 

그의 뒤를 이은 교황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거기에 머물렀고, 이는 교회에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그레고리오 교황 역시 프랑스인이었는데, 로마로 되돌아가겠노라고 공식적으로 약속했지만, 프랑스 왕과 마찬가지로 많은 추기경들이 교황을 반대했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자신의 결심을 굳혀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가타리나는 일련의 놀라운 서간들을 통해 이런 역할을 해 냈다. 솔직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그녀의 서간들은 교황으로 하여금 굳건하고 남자답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분을 따르세요." 그녀는 교황의 이기심을 지적하면서, 이기심 때문에 교황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리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서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주교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인기 없는 말이나 행동은 피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을 멀리 하도록 권하는 대신에, 다툼을 일이킬 것이 두려워 "악에 회반죽을 바를 것" 이다.

 

이런 식이라면, 모든 이들과 평화롭게 지내고자 하는 바람은 "가장 끔직한 행위" 가 될 수 있다. 의사가 고통스럽더라도 꼭 필요한 치료법을 처방하는 것처럼, 주교는 사람들이 아무리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복음의 진리를 증언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타리나는 서간에서 재차 그녀의 "사랑하는 아버지" 가 로마로 돌아가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은 촉구했다. 나아가 부패한 성직자들을 가려내고 "거룩하고 진실한 목자" 가 될 만한 주교들을 임명해서 교회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아무나 이런 식으로 교황을 훈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타리나였기에 그녀의 삶의 방식이 그레고리오 교황에게서 인정과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교황은 그녀의 조언대로 실행했고, 1377년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옮겼다.

 

                                     

                                                               <말씀지기 / 로버트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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