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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은 기적이다(Life is a Miracle) ----- 2006.7.30 연중 제17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31 조회수518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7.30 연중 제17주일

 

열하4,42-44 에페4,1-6 요한6,1-15

                                        

 

 

 

삶은 기적이다(Life is a Miracle)

 

 



어느 투병중인 수녀님의 다음 말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전에 건강했을 때 병으로 고통중인 이들을 대할 때

 ‘잘 참아 견디라’라는 등 쉽게 말한 것이

  참 마음에 걸리고 부끄럽습니다.

  내가 아파보니 말은 쉽게 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딱한 사정을 털어 놓으며 도움을 청할 때 참 답답한 심정입니다.


소위 난치병이나 불치병,

경제적인 큰 실패,

실직,

미취업,

가족 간의 불화,

이혼을 앞둔 부부,

알콜이나 도박 중독,

재산 다툼,

심한 우울증 등,

복잡한 사회만큼이나 복잡하고 힘든 일들 얼마나 많은지요!

  
요즘 나라 안팎의 사정은 얼마나 또 복잡합니까?
수해에다 가중되는 정치적 불안에 경제적인 어려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남북의 긴장과 국제적 냉기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참으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입니다.
절대 믿음의 끈, 생명의 끈 하느님을 놓쳐선 안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 실망해선 안 됩니다.
시련과 유혹이 크면 클수록 기도도 열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당신을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바로 여기서 떠오르는 게 예수님의 겟세마니 기도입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초점은 다급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에 있습니다.


내 소원 간절히 아뢴 다음,

이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내 소원 기적처럼 이뤄지면 하느님께 감사하고,

내 소원 이뤄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은 다른 데 있음을 깨닫고

훌훌히 자신의 뜻을 털어버리고 즉각 주님께 순종하는 것,

이게 진정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은 군중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굶주림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 치유 받았던 이들 결국은 모두 죽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진리, 사람은 언젠가는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바랄 수는 있지만 궁극의 초점은 하느님께 두는 것이요

온통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래야 진정 내적 평화요 자유로움입니다.

기적도 치유도 일어납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 진정 믿음의 사람입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햇곡식 이삭 자루의 적은 양에 실망하지 않고

아버지께 전적으로 위탁합니다.

 

말 그대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입니다.

이래야 후회함이 없고 하느님 앞에서도 떳떳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엘리사의 시종의 낙심어린 말, 오늘 복음의 안드레아의 반응과도 흡사합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 부족한 우리 모두의 보편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사람 눈에 하찮은 것이지 하느님께 하찮은 것은 없습니다.

기도와 정성이 담겼으면 하느님은 기적의 도구로 쓰십니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런 철석같은 믿음 있어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반응도 똑 같습니다.

전혀 초조하거나 불안한 기색 추호도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이어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합니다.

 

최선을 다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온전히 아버지께 그 결과를 맡겼을 때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버지의 뜻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아버지의 처분을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내 뜻대로의 기적보다는 아버지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언제나 진인사 대천명 믿음의 결과 후에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 덕분에 배불리 먹은 군중들,

그 육신의 양식 넘어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주님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하여 억지로 예수님을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아 현실적 욕구를 채우려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만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도 기적입니다.
내적 깨달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의 체험, 내적 기쁨, 내적 평화의 체험이 더 큰 기적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결국 언젠가는 죽습니다.
건강하게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주님을 모심으로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게 우리의 궁극 목표입니다.


온전히 ‘하나’의 깨달음 속에 살 때 영원한 삶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이 ‘한 분’ 안에 있음의 자각이 바로 구원체험입니다.
이 ‘한 분’에서 벗어나 있기에

고립 단절감의 외로움 속에 영육이 황폐화 되어가는 겁니다.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신 하느님이요,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을 위해

복잡하고 산만한, 천박한 얕고 가벼운 세상에서

때때로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래야 기적으로 가득 찬 삶임을 깨닫습니다.
얼마 전 본 ‘삶은 기적이다(Life is a miracle)'란 책 제목도 떠오릅니다.


중요한 건 외적 진보나 발전이 아니라 개안이요 회심입니다.
마음이 눈이 열렸을 때

온통 삶은 하느님의 기적이요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이런 개안(開眼)이나 회심(回心)보다 더 좋은 기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 복음 말미의 예수님의 처신, 그대로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세속의 감미로운 유혹을 직감하신 주님,

아버지와 깊은 일치의 친교를 나누려 혼자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이제 영혼이 살기위해 고독과 침묵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혼자 고요히 고독과 침묵 중에 하느님 체험하며 영육을 충전시켜야

늘 ‘한분’이신 주님과 일치감 속에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큰 기적인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주님을 모시니 참 행복한 우리들입니다.

 

주님 주시는 참 좋은 선물, 영원한 생명입니다.
지금 여기서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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