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41 > 무폼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31 조회수802 추천수10 반대(0) 신고

                 

                               무폼


   며칠 전에 주부 레지오에 강복을 주러 들어갔더니 웬일로 내 얼굴을 힐끗힐끗 보고는 자기들끼리 쑤군대며 눈치껏 웃곤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겸연쩍은 생각에 강복을 서둘러 주고 나오려니까 한 자매님이 내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물어 오는 것이 었다.


   “신부님, 약은 잘 드시고 화장품은 매일 바르시지요?”

   순간 나는 그게 뭔 말인지 몰라서 우두커니 선 채 바보처럼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있잖아요1” 하면서 또 다른 자매님이 부연 설명을 하는데, 듣고 보니 지난 추석에 그 레지오팀이 선물로 보약과 남성용 화장품을 신부님게 드렸는데 잘 자시고, 잘 쓰시고 계신지 확인차 물어 왔던 것이다.


   난 본래 멍청한 데가 있어서 누가 불쑥 뭔 말을 하면 대답을 못해서 얼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도 그랬다. 사태가 어덯게 돌아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쑥맥 같은 것이 그저 곧이곧대로, “아, 그 약은 불쌍한 할머니를 드렸고 화장품은 친구 신부님께 드렸다”고 했더니 단원들이 일시에 우거지상을 하면서 대단히 서운한 표정들을 짓는 것이었다.


   아줌마들은 그날, 레지오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요즘 신부님이 보약을 드시고 화장품까지 바르시니 얼굴에 살도 오르고 피부도 희어졌다고 당신들끼리 좋아하며 흐뭇해 하셨던 모양인데 이 맹추 같은 것이 엉뚱한 말을 해싸버리니까 그만 산통이 깨져 버렸던 것이다.


   사실, 난 얼굴에 뭘 발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매일 아침 면도를 하지만 스킨로션 한 번 찍어 바르지 않으며, 머리 또한 몇 가닥 밖에 없으니 서품식 때 이발소에 가고는 아직 한번도 머리를 손질해 본 일이 없다. 그냥 내 손으로 빗에 면도날을 씨워 깎아 내곤 했었다. 바르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조차 나는 감각과는 항상 먼 거리에 있었다.


   원래 생긴 것이 없어서 그런지 난 처음부터 멋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이런 나를 보고 어머니는 ‘무폼’이라고 하셨는데, 해석하자면 폼이 없다는 것이다. 그게 아마 2.30대 청년시절이었던 것 같다.


   신학교 때 다른 신학생들이 세면장에서 샴푸를 쓰는 것을 보고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 난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았으며 지금은 세숫비누로 감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샴푸나 화장품을 쓰는 신부님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마 전에 낡은 모자를 잃어버리고는 새로 하나 사서 썻더니 착모식을 하라고 야단들이다. 3천 원짜리 모자에 착모식이고 어쩌고가 있을까 마는, 워낙 들여다 볼 건덕지가 없는 인생에 뚜껑이 하나 바뀌니까 그게 그렇게 신통하게 보이고 재미스런 모양이다.


   신부에게 멋이란 무엇인가?

   목욕 자주 하고 옷 깨끗이 빨아 입으면 됐지 다른 뭐가 있을까 마는, 다만 내 못난 소가지 땜에 진정한 멋이 흐려질까 걱정도 된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소가지(심성()’ 속되게 이르는 .)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