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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복음선포에 필요한 일꾼이 되어야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1 조회수66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6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마태오 9,35 )

 

 Jesus went around to all the town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oclaim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curing every disease and illness.

 

 


 

 예수님께서는 온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가운데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 아울러 수확할 것이 많은데 일꾼이 적은 것을 보시고 일꾼을 청하도록 권고하십니다

 

☆☆☆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문제들도 많습니다. 문제들이 많은 만큼 할 일도 태산 같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는 곳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본당 신부님 대부분에게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사만을 집전하기에도 바쁩니다.
군종 신부님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경찰 사목에도 신부님들의 손이 모자랍니다. 병원, 학교, 복지 사업 등 사목 현장 곳곳에 목자들과 봉사자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성실한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복음선포에 필요한 일꾼이 되어야 † 


오늘 복음으로써 마태오가 집성한 예수님의 10가지 기적사화에 관한 보도(8-9장)는 일단 막을 내리고 12제자의 선발과 파견설교(10장)가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기적사화 집성문의 마지막 사건으로 마귀 들린 벙어리의 치유를 보도한다. 기적사화 집성문의 마지막 열 번째 기적이다.


그러나 복음에서 보다시피 벙어리 치유에 관한 내용(33a절)은 단 한 줄에 담겨있고, 나머지는 치유사화에 대한 군중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상이한 반응(33b-34절)을 소개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한 전반적인 복음선포 활약상(35-36절)을 요약하고 있다. 끝으로 예수님의 복음선포에 제자들의 협조가 필요함을 암시함으로써(37-38절) 제자선발과 파견설교를 예고한다.


마태오가 마귀 들린 벙어리의 치유를 이토록 간단하게 보도하고, 오히려 그 반응을 상세히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 간단하다보니 좀 성급한 느낌도 든다. 그런데 우리의 흥미를 돋우는 일이 있다. 마태오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벙어리 치유와 사람들의 반응에 관한 오늘 복음의 대목은 나중에 중복하여 보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22-24 참조) 뿐만 아니라 어제 복음(9,18-26)과 오늘 복음(9,32-38) 사이에 빠진 부분(9,27-31)도 다시 반복됨을 발견할 것이다.(20,29-34 참조)


비교적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마태오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범했을까? 물론 자세히 살펴 하나씩 비교해 보면 서로 다르게 보이기도 할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같다. 서로 다른 점은 두 가지의 기적사화가 9장에서는 대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12장과 20장에는 약간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의문점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마태 11,2-6)에서 풀린다. 특히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5절)는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메시아의 도래로 인한 하느님의 구체적인 자비의 행적이 증언되기 전에 소경과 벙어리 치유가 선재(先在)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마태오가 예수님의 기적사화들을 논리적으로 한데 모아 집성하려는(8-9장) 과정에 따른 무리수(無理數)로 지적된다.


오늘 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 복음과의 사이에 빠진 부분을 살펴보아야 한다. 빠진 부분은 예수께서 회당장의 딸을 다시 살려주시고 그의 집을 떠나 길을 가시는 도중에 일어난 소경의 치유기적사화이다. 이 대목의 원전(原典)은 바로 마르코가 보도하는 예리고의 소경 치유사건(10,46-52)이다. 물론 마태오는 원전에 충실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개작(改作)한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7절로 이루어진 대목을 5절로 축약하면서 1명의 소경을 2명으로 바꾸었고, 지명(예리고), 소경의 이름(티메오의 아들 바르티메오), 그리고 소경의 간절한 부르짖음과 사람들의 나무람 등을 삭제해버렸다.


이로써 예수님의 권능이 뚜렷이 부각되며, 그것도 소경 1명을 2명으로 바꾸었으니 마르코에서보다 2배로 강하게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신 후에 치유된 두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단단히 함구령(緘口令)을 내리신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들은 곧장 그 길로 달려가 온 동네에 소문을 퍼뜨린다.(30-31절)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당신에게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이유를 오늘 복음과 연결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록 마태오가 단 한 줄로 보도하고 있는 마귀 들린 벙어리의 치유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분명 앞서간 소경치유 끝에 내려진 함구령(緘口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수님의 정체를 똑바로 알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벙어리가 다시 말을 하게 된 것을 보고 군중이 “이스라엘에서는 처음 보는 일이다”(33절)라고 웅성거리며 놀란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 편에 서서 같이 놀라거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저 사람은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34절) 하며 빈정거린다고 해서 이들을 경계할 필요는 없다. 군중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기에 감탄했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기적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 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고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36절)일 뿐이며,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은 진정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 지를 알고, 예수님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도와 세상의 추수(秋收)에 필요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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