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그대 뒷모습 . . . . . . . . [정채봉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1 조회수1,097 추천수16 반대(0) 신고

  

 

 

 

      지난 2월 어느 날이었다.

 

  또박또박 걸어가는 앞 선 여인의 발걸음이 그렇게 곧을 수가 없었다.

  앞에서 사람이 충돌할 듯 마주 오면 투우사처럼 한 걸음 옆으로

  비켜나서 걷는 것도 앙증스러워 보였다.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책을 꺼내어 보았고

  전철 속의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갈 때는 연신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러나 내가 정작 감동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추운 겨울 아침의 전철 창은 성에가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럴때 대개의 사람들은 무심하지만

  더러는 손길이 닿는 부분을 빼꼼히 닦아서 자기 한 사람이 족할 만큼의

  창 밖 풍경을 내다보곤 한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핸드백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유리창 전체의 성에를

  다 닦아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여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성인(聖人)들의 초상화에서

  보는 후광(後光)이란 바로 이런 데서 생기는 것이겠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었다.

 

  간혹 우스개 소리로,

  우리집 장롱의 상흔을 헤아려 보면

  우리집이 이사 다닌 횟수를 알아 낼 수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상도동에서 수유리로, 수유리에서만도 3번, 태릉으로, 그리고 수원으로..

 

  그동안에 딱 한번 전 주인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나한테 아주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선생님이 이사해 오신 그 집에서 7년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날 사정상 선생님 댁이 오시기 전에 저희가 떠난 관계로

    서로 상면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펜을 든 것은 그집에서 살아 본 사람으로서 일러드리고 싶은

    두어가지가 생각나서입니다.

 

    먼저 건너방에 연탄 가스가 한번 샌 적이 있습니다.

    물론 경미한 일이었고 수리도 곧바로 했었습니다만 혹시 또 모르니

    가구를 들여놓으시기 전에 한번 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쩌다 부엌 하수구가 막힐 때도 있었는데

    그것은 부엌 위치상 하수도 배관이 휘어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럴땐 부엌 뒤꼍에 있는 작은 돌무더기를 헤치고 뚫으면

    큰힘이 들지 않습니다.

 

    옆에서 집사람이 또 하나 더하는군요.

    아주머니께서 찬거리를 사실때는 골목시장의 끝에서 두번째 있는

    할머니 가게에서 사는 것이 싸고 맛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 할머니는 부모 없는 오누이를 공부시키시면서 근근히 살아가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럼 선생님 댁에 두루 편안하시고 즐거운 나날이기를 기도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자연을 보고 있자면 시작도 물론 아름답다.

  먼동이 터오는 아침,

  봄날의 여린 새싹들,

  어린 새들의 재롱...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운 뒷모습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해질 무럽의 저녁 노을,

  저 불붙는 듯 화려한 낙엽들,

  새들도 죽을 때 우는 울음이 가장 빼어나다 하지 않던가.

 

  뒷모습은 곧 그 사람의 성숙도을 나타낸다.

  이 지구를 다녀 간 뒤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분들을 보라.

  어디 뒤끝이 상큼하지 않은 이가 있는가!

 

  그 사람의 실체는 정작 본인이 떠난 다음에 그가 머문 자리에서

  운명처럼..

  향기처럼..

  남는 것이다.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들의 이웃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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