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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23)/깨어진 창을 통해서 보면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30 조회수661 추천수11 반대(0) 신고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23)

 

 

그런데 용인에 있는 저희 성직자 공동 묘지에 가게 되면, 저희 성직자 공동 묘지 바로 옆에 일반 평신도들의 묘지가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강한 인상을 남겨 놓았던 글이 뭐냐하면요. 그 묘지 앞에 있는 묘비명이었습니다. 

 

아! 묘비명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석이 하느님이 데려가시니, 하느님을 찬미할 뿐!"

 

그리고 밑에 "다섯살 때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석이를 기리며... 할머니, 아빠, 엄마, 여동생."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그 묘비명을 만들 때, 정말  "하느님께서 주신 석이 하느님이 데려가시니, 하느님을 찬미한다" 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마 신앙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마는 시간이 갈수록 사실이 됐을 겁니다.

 

우리가 고통속에 있을 때, 그 고통을 통해서 이제 비로소 하느님을 보고 그래서 그 지난날의 힘겨웠던 체험들이 구원적인 체험이 되고 신학적인 체험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통 한복판에 있을 때,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하느님을 떠나거나,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린다거나 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고통속에서 하느님을 왜곡되게, 굴곡되게 보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너무 힘겹기 때문에...깨어진 창을 통해서 하느님을 본다는 그런 영성시를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그냥 조용히 쉬는 마음으로 들으시고 졸음이 오면 졸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창을 통해서 하느님을 바라다 본다.

 언젠가 언젠가 그 마음의 창은 순백하리만큼 깨끗하였다.

 하느님의 모습은 또렷또렷하게 보였다.

 참으로 맑고 평화로운날.

 

 언덕이나 골짜기를 쳐다보듯이 하느님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음의 유리는 깨끗했고 마음의 창틀은 온전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있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는지 알고 있었으며

 또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마음의 창이 깨어졌다.

 돌맹이 하나가,

 고통의 돌맹이 하나가 날라와서 우리 마음의 창을 깨버렸다.

 그 고통의 돌맹이는 사별일 수도 있고, 이혼일 수도 있고,

 갑작스런 사고일 수도 있으며, 병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언젠가 고통의 돌맹이가 날라와서

 우리 마음의 창을 산산 조각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돌맹이들이 날라 온다는 사실이다.

 

돌맹이가 어떤 돌맹이이든 결과는 항상 같으니 우리 마음의 창이 계속해서 조각난다는 것이다. 마음의 창틀은 박살나고 유리창들은 조각나는 것이다.

 

깨어진 창을 통해서 하느님은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전에 그렇게 똑독하게 보였던 하느님이 이제는 조각나서 보이는 것이다.

 

깨어진 조각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전체로서 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조각난 마음, 상처난 마음을 갖고서 하느님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송봉모 신부님의 영성강좌 테잎>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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