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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8 조회수879 추천수14 반대(0) 신고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요한 11장 19-27절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정녕 견디기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입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작은 일에 마음 상해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가 화해하고, ‘지지고 볶고’ 티격태격 살아가던, 어쩌면 내 분신 같던 그의 영원한 부재,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 따뜻했던 미소, 부드러운 음성, 함께 했던 좋은 추억들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것, 참으로 큰 상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미처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서 그리 서글피 통곡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사전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순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이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주 이런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잠들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이 이 사람과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결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랑하는 오빠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애통해하는 마르타의 모습이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오빠였기에, 아직 갈 길이 창창했던 오빠였기에,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되었던 오빠였기에 마르타는 이 현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나자로와 절친했던 예수님이셨기에 초상집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마리아는 집안에 그냥 앉아있었던 반면, 열혈여성이었던 마르타는 좀 따져봐야겠다며 집 밖으로 나옵니다. 볼멘 목소리로, 노기가 가득 표정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타의 이 말은 꽤 힐난조의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당신은 오빠의 친한 친구가 되어가지고, 친구가 죽어가는 데 왜 빨리 오지 않았냐, 아무리 공사다망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며 따지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마르타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많은 경우 이렇게 따지지 않습니까? 도무지 수용하기 힘든 참혹한 현실 앞에서, 난 데 없이 다가온 큰 십자가 앞에서 ‘당신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시면서 어떻게 이런 몹쓸 일을 제게 허락하십니까? 어쩌면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라며 하느님께 따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르타가 우리와 다른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그 어떤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내 인생에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마르타는 이렇게 간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마르타의 굳건한 신앙, 단순한 신앙, 어찌 보면 집요하고 지나칠 정도로 강한 주님께 대한 신뢰심에 예수님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응답하십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몇 부류 있습니다. 착해빠진 사람들, 그래서 단순한 사람들,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달려드는 집요한 사람들, 한 마디로 마르타 같은 사람들 무서워하십니다. 그런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나자로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며 생각해봅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많은 분들과 작별하며 살아갑니다. 가까웠던 친구들도 떠나갑니다. 축의금보다 조의금 액수가 점점 더 늘어가는 것,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그런 죽음을 바라볼 때 마다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내 죽음도 멀지 않았구나, 나도 언젠가 저 관속에 누워있겠구나, 생각하며 더욱 겸손하게, 더욱 하느님 두려워하며, 더욱 성실히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나자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유활동을 통해,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불치병에서 회복되어 다시 한 번 새 삶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유한한 것입니다. 영원히 기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거처를 떠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 꾸며놓았던 장막을 치워야 합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이승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단 한 가지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빈손이요, 빈 영혼입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물도, 명예도, 자식도, 유산도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 하느님으로 고백했던 굳은 신앙심입니다. 비록 부족했지만, 많이 부끄러웠지만 예수님 말씀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우리들의 신앙여정입니다. 열렬했던, 확고했던 마르타의 신앙입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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