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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8 > 두 물통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8 조회수877 추천수9 반대(0) 신고

                          

 

 

 

                               두 물통



   플라스틱 물통과 함석 물통이 우물가에서 만나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먼저 플라스틱이 입을 열었다.


   “얘, 함석아! 우리가 날마다 우물에 와서 물을 담아 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가 다시 돌아가면 도로 빈 통이 되잖아!” 그래서 플라스틱은 이 하나마나한 짓거리에 신물이 난다면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다음에 함석이 말했다.

   “플라스틱아, 네말도 일리는 있지만 그러나 왜 그렇게만 생각 하니! 내경우는 늘 빈 통으로 우물에 오지만 그러나 돌아갈 때는 가득 채워져서 돌아가니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단다” 하면서 함석은 자신에 넘치는 행복을 기쁨으로 대답하였다.


   신자들의 이야기가 가끔 두 물통의 경우와 같을 때가 있다. 먼저 플라스틱 신자가 투덜거렸다.

   “얘, 함석아! 우리가 주일마다 성당에 와서 미사에 참례하고 강론을 들으면 무슨 소용이 있니? 다시 한 주일을 살게 되면 강론이고 하느님이고 다 잊어버리게 되잖니!” 그래서 플라스틱은 주일 돌아오는 것이 성가시고 귀찮다는 듯이 불평하였다.


   다음엔 함석 신자가 말했다.

   “얘, 플라스틱아! 너는 왜 신앙을 그렇게만 생각하니? 내 경우는 한 주일 동안 내내 빈 깡통으로 지내다가 이렇게 성당에만 오면 위로받고 용서받으며, 그리고 말씀과 영성체로써 가득 채워져 돌아가게 되니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른단다” 하면서 함석은 자신의 축복을 기쁨으로 자랑하였다.


   똑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바라보는 눈의 각도와 열려진 신앙의 크기에 따라서 은혜가 될 수도 있고 불편한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신앙은 진실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밝고 예쁜 안경을 제공해 주건만, 눈을 떴다고 하는 자들은 안경을 오히려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 하느님 앞에 송구스러울 때가 있다.


   “유다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다인을 지켜 준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그런 것이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우리를 지켜주며,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이 우리를 지켜 주는 것이다. 그 의미를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저 어둡고 불안한 그늘 밑에 갇혀 있는 것이 된다.


   기도를 자주 외면하고 건수만 있다면 주일을 빼먹는 일을 다반사로 여기는 신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에 심한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게 다 누구의 탓도 아니요 오로지 본당 신부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에 더 큰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지금 플라스틱이냐, 아니면 함석이냐?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조차 송구스러운 생각이 든다. (R)

 

http://my.catholic.or.kr/vegabond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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