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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제가 이런 곳에서 삽니다!”/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9 조회수985 추천수9 반대(0) 신고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

 

                               

 

                            책을 내면서



   나는 본래 글쟁이가 아니다. 글 쓰는 데는 취미도 없고 소질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지닌 신분상 억지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은혜였다!


   처음에 ‘생활성서’사의 수녀님들이 내가 쓴 글을 모아 책을 내자고 했을 땐 황당했었다. 내 글에는 남에게 감동을 줄 만한 내용이 없었으며 문장의 표현력 역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수녀님들이 1992년에 만든 책이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였다.


   그 후로 1996년에는 무슨 용기였는지 내가 자청해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이라는 강론집을 냈다. 가톨릭신문에 3년 동안 (1992~1995)강론을 연재 하면서 은혜는 문장의 표현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깨달음으로 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0년이다.

   소록도에 들어온 지 만3년이 넘었고, 또 후원회를 조직하여 은인들에게 편지를 쓰다보니 책을 한 권 낼 분량이 되었다. 부제로 ‘소록도에서 온 편지’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이름 붙일 자격이 내겐 모자란다. 아직은 소록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엉성한 내 삶의 한 부분이 다른 이들에게는 재미와 기쁨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다. 특히 소록도를 도와 주시는 은인들에게 그동안 드렸던 편지를 하나로 엮어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내가 사제로 살면서 얻은 체험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편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은헤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2000년 7월   강 길 웅


                         

 

 

                 “예수님, 제가 이런곳에 삽니다!”



   2000년 6월 현재 소록도에서 요양 치료를 받고 있는 한센병(나병)환우는 모두 879명이다. 이 중에서 양성 반응을 가진 분들이 20여명 있으나 그분들에게도 남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 전염병은 일체 없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신체 장애가 된 불구 노약자들이며 평균 연령이 71세인 것을 보면 한센병 환우들은 수명과 관게없이 천수를 누리신다.


   그런 걸 보면 신기한 생각도 든다. 젊어서부터 독한 약을 많이 잡수셨으며 또 중노동으로 인해 신체가 많이 손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거 환경마저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토록 오래 사실 수 있는지, 소록도의 환우 노인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도 기어이 다시 일어서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오뚜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덕이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여든여섯인데, 눈 멀고 손발이 성치 못한 상태에서 음식을 드시거나 배설하실 때도 간호의 도움이 없이는 꼼짝 못하시고 마치 식물인간처럼 침대 위에 누워만 게시는 분이시다. 한번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와서 입원실로 달려 갔더니 담당 의사도 전혀 가망이 없다면서 심전도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할머니는 임종 직전이었다.


   나는 황급히 병자성사를 드리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한 삼십 분 정도 지켜 있다가 돌아 왔는데 그 얼마 후에 어디에선가 낮은 허스키 소리가 계속 간호원실에 들려 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호들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갔더니 글쎄 숨이 꼴깍 넘어갈것 같던 할머니가 “간호야 밥 줘!” 하시며 밥 타령을 하더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이를테면, 가만히 누워서도 사람들을 울렸다 웃겼다 하신다.


   숭녕 할머니는 올해 꼭 여든이신데 당뇨로 인한 급성 신부전증으로 상태가 아주 위독하셔서 벌서 응급실에 여러 번 실려 가신 분이다. 지난번에 위출혈까지 심해 고흥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이 되었을 땐 그쪽 의사도 전혀 가망이 없다면서 장례 준비를 말했는데 다음 날에  방문하니 그 할머니도 껄껄 웃으시며 밥을 어찌나 잘 드시는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웃기는 분들 중엔 또 이런 분들도 있다.

   오봉 할아버지는 연세가 일흔여덟이신데 시력 장애에 의족까지 하셔서 거동이 아주 불편하신 분이나 술을 무척 좋아하신다. 부임 초(97년)였다. 한번은 맹인들만 몇 분 사제관에 모셔서 식사대접을 하는데 이미 소주를 한 병이나 드시고 당신은 아직 술 한 잔 못 마셨다고 억지를 쓰셨다. 나는 그때 오봉 영감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는 그후부터 봉사자들에게 늘 주의를 주곤 했다.


   본래 소록도의 원내 규칙상 환우들은 술을 마실 수 없지만 그래도 워낙 좋아하시는 음식이라 성당에서 행사가 있을 땐 가금 술을 준비하는데 그때마다 오봉 영감님 때문에 보통 긴장이 되는 게 아니다. 봉사자들에게 그렇게 주의를 줘도 그분의 억제에 휘말리게 되면 봉사자들도 속수무책이고 한번 발동이 걸리면 동네 전체가 소란하게 된다.


   왕년에는 ‘천하의 권오봉’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정도인데, 왜냐하면 무슨 서운한 일이 있으면 소위 ‘작대기 부대’(맹인들이 지팡이를 짚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를 이끌고 자주 병원에 쳐들어갔던, 이를테면 경력이 화려한(?)분이기 때문에 순진한 봉사자 하나 당신 뜻대로 다루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인 것이다.


   병홍 할아버지는 연세는 젊지만(63세) 정신은 많이 가신(?) 분으로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당신은 소록도에 사는 다른 환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늘 강조하신다. 말인즉슨 다른 분들이 다 한센병으로 들어왔다면 당신은 매독 때문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곧이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분은 무슨 자랑이나 되는 듯이 나를 볼 때마다 항상 그렇게 주장을 하신다.


   한번은 병홍 할아버지의 다리가 크게 썩어서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하는데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했다. 이를 보고 다리를 그냥 두면 나중에 허벅지까지 잘라도 모자라기 때문에 얼른 절단해야 한다고 해서 수녀님이 달래고 달래서 절단을 했는데, 절단 후에 병홍 할아버지는 수녀님만 보면 고발을 한다 해서 수녀님도 보통 애를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수녀님이 그분에게 양복을 한 벌 해드리자는 말씀을 하셔서 시장에서 14만원을 주고 기성복을 사 드렸는데 옷에는 엉뚱하게도 ‘400,000원’ 이라는 레테르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였다. 주일에 병홍 할아버지가 근사한 폼으로 미사에 오셨는데 양복에는 여전히 ‘400,000원’ 이라는 레테르가 앞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수녀님이 얼른 그 레테르를 떼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록도 사람들은 무식해서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양복이 얼마나 비싼 옷인 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테르를 그대로 달고 있어야 사람들이 그걸 보고 비싼 옷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절대로 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좌우간 그때부터 ‘고발’ 소리는 쑥 들어갔지만, 한마디로 소록도에는 못 말리는(?)분들이 많아서 은혜도 많고 재미도 많은 곳이다.


 “예수님 제가 이런 곳에서 삽니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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