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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묵상]올바른 신앙인의 모습 / 홍승모 미카엘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9 조회수70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7월 9일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 6,4)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native place
and among his own kin and in his own house.”

 

 

 

 

 예수님께서 나자렛 고향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위인들이 자신의 고향과 친척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위인에게 있는 것입니까? 고향 사람들과 친척들에게 있는 것입니까? 후자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가 훌륭한 인물이 되어 돌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습니까? 환영은커녕 “개천에서 용 났네!” 하며 빈정거리기조차 합니다. 어린 시절 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그리 좋은 집안도 아니었는데 금의환향하는 그를 어떻게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재수가 좋았거나 어떤 술수를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 친구의 잠재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그의 인격적 재능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차라리 볼 수 없었다면 남을 비난하는 죄는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 돌아오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마르 6,2).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을 체험한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놀랍기만 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 6,3). 예수님의 보잘것없었던 과거 신분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자신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을 과시하려 합니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전하는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그들은 그분에게 걸려 넘어졌다”입니다. 곧 예수님은 그들이 부딪혀 넘어지는 걸림돌, 곧 신앙의 장애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친밀한 관계를 막는 장애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그들의 걸림돌이 된 것일까요? 문제는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에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다빈치 코드’의 문화적 파장이 낳은 결과에서도 보입니다. 일부 신앙인들마저 ‘다빈치 코드’의 영향으로 예수님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신앙이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태도가 오히려 예수님의 삶에서 드러나는 주님의 뜻을 식별하는 데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이런 태도의 뿌리에는 결국 예언자 에제키엘이 경고했던 반항하는 마음, 곧 구원역사 안에서 숱하게 체험했던 주님의 놀라운 힘을 믿으려하지 않는 뻔뻔하고 완고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에제 2,4 참조) 이런 마음은 예수님 안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주님의 놀라운 힘을 가려버리고 예수님의 과거 신분과 같은 세상적인 잣대를 세우게 합니다. 과연 세상적인 잣대만이 우리 삶의 위로가 되고 우리 삶의 전부일까요?


   우리 신앙인은 세상이 제시하는 가치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조차, 학력과 연봉, 사는 지역과 아파트 이름, 자동차의 기종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주님을 향한 믿음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고 복음도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제2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 봅시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세상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우리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총이라는 당신의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왜 자신의 나약함을 자랑으로 여겼겠습니까? 자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그만큼 주님의 은총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만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채워 주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홍승모 미카엘 신부·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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