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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흑 장 미 . . . . . . . . . . . . .[정채봉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8 조회수629 추천수7 반대(0) 신고

 

 

 

흰구름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산악 지대의 한 탄광촌을 알고 있지..

저 땅속 깊은 데서 끌어낸 검은 석탄이

또다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그 아래에

슬레이트 지붕을 한 집들이 많은 작은 마을.

 

이 마을에는 작은 성당과 작은 학교가 하나씩 있지.

그리고 산밑으로는 개울도 하나 있는데

거기에 흐르는 물은 온통 검정물이야.

 

검은 것은 개울물만이 아니지.

아이들 얼굴도 까맣고

성모 마리아상도 까맣지..

 

이 동네에 쉴새없이 꽃밭에 피는 꽃들도

사흘이 못 가 검어져 싫어지는걸.

 

그런데 이 검은 것을 유난히도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지.

이 마을의 맨 가장자리 후생주택에 살고 있는 '분이'였는데

분이가 성당의 성모상 앞에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것을

나는 들었어.

 

"나도 도시 아이들처럼 하얀 얼굴이고 싶어요.

 우리 아빠가 내 이름을 분이라고 지은 것은

 아기였을때 내 얼굴이 분처럼 하얗기 때문이었대요."

 

"지금 내 얼굴이 검은 것은 순전히 여기 탄광촌에 살아서 그래요.

 성모님, 우리를 도시로 이사 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성모님도 함께 이 동네를 떠나요.

 도시에 가면 성모님도 하얗게 될 거예요."

 

성모 마리아상 주변에는 장미꽃이 한창 아름답게 피어 있었지.

그런데 그 장미꽃한테도 석탄 가루가 거뭇거뭇 앉아 있었어.

장미꽃 앞을 지나치려던 분이가 문득 발을 멈추었어.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는 거야.

 

왜 그러는 거냐구?

글쎄 나도 처음에는 의아하였지.

무엇때문에 손수건을 꺼내는 것일까 하고.

그러나 나는 이내 그 이유를 알았어.

 

분이가 손수건으로 훌훌 장미꽃 송이들을 터는 거야.

그러나 땅바닥에는 석탄 가루보다도

빨간 장미꽃잎만  숭숭숭 떨어지고 있었지.

 

마침 사제관에서 신부님이 나오시다가 이것을 보았지.

신부님이 다가와 물었어.

 

"지금 무엇하고 있니?"

 

"석탄 가루를 털어내고 있어요."

 

"그러다가 꽃잎 다 지겠다. 그냥 두렴."

 

"싫어요, 석탄 가루를 다 없애겠어요."

 

빙그레 웃으며 그냥 지나칠 것 같던 신부님이 다시 돌아섰지.

 

"그러고 보니 너는 석탄을 미워하고 있는 거로구나?"

 

"네, 신부님 저는 석탄을 미워해요.

 나도 검게 하고..

 성모님도 검게 하고...

 꽃도 검게 하니까요."

 

"그럼 탄광에 다니시는 아빠도 미워하겠네?"

 

신부님이 분이의 키 높이로 구부리고 앉으며 말했어.

 

"너는 탄광 속이 어떤 곳인 줄 아니?"

 

"지하 철도요."

 

"그래 지하 철도지.

 그리고 끝없이 파고 들어가는 어둠 속이기도 하지..

 무덤이기도 하고.."

 

"무덤이요?"

 

"그래.

 지난 여름에는 갱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기도 했지 않니.

 그런대도 너의 아빠는 지금도 그 속에서 일을 하시지.

 누구 때문이겠니?"

 

분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꾸도 안했어.

신부님이 분이 손목을 가만히 잡았지.

 

"나는 어제 갱에 들어가서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해성사를

 들었단다.

 땀과 석탄 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었어.

 그런데 그 중 한 분의 딸아이가 탄광촌에서 살기 싫어해서

 혼을 낸 것이 가슴 아프다며 용서를 빌었지.

 거기서는 눈물도 검정 눈물이더구나..."

 

분이가 신부님의 어깨에 고개를 묻는 것을 보고

나는 그곳을 떠났지.

수평선 너머로 멀리멀리 가고 싶은 날이었어.

 

그런데 오늘 낮의 일이야.

쌓인 눈이 녹으면서

다시 검은 빛이 드러나는 이 탄광촌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서서 웅성거리고들 있었지.

 

"탄광문을 닫는다는데 어디 갈 만한 데라도 찾아보셨나요?"

 

"우리는 서울로 가려고 해요.

 리어카 행상을 하고 살아도 이보다는 나을 거라는군요."

 

"분이네는 어디 갈 만한 데를 생각해 두었는가요?"

 

"우리는 다른 탄광을 찾아가려고 해요.

 이제껏 해왔고,

 또 잘할수 있는 일은 그 일밖에 없거든요."

 

나는 분이가 어떨지 궁금해서 학교로 가보았지.

마침 분이네 교실에서는 분이가 지은 작문을 읽고 있었어.

 

"나는 탄광을 찾아 나서는 우리 아빠가 누구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아빠, 아빠를 사랑합니다."

 

 

 

정채봉님의 어른을 위한 동화 "하얀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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