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미우나 고우나 식구가 최고입니다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8 조회수960 추천수17 반대(0) 신고
7월 9일 연중 제14주일-마르코 6장 1-6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미우나 고우나 식구가 최고입니다>


가끔씩 장경동 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설교를 재미있게 하시는지, 또 명쾌하게 하시는지, 설교를 따라가고 있노라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설교를 하시는 본인도 행복해보이지만, 듣고 있는 신자들의 얼굴은 더욱 환합니다. 설교가 정말 예술입니다. 개그 프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훌륭한 목사님들 뵈면서 반성도 많이 합니다. 그런 좋은 말씀을 선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셨을까,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셨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세파에 지친 영혼들은 사제들의 입을 통한 하느님 위로의 말씀을 잔뜩 기대하며 교회를 찾아오는데, 과연 나는 거기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 말입니다. 꿀같이 단 말씀, 생명수 같은 말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단은 선포하지 말아야 할 텐데, 신자들 꾸벅꾸벅 졸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반성.


오늘도 목사님께서는 참으로 의미 있는 말씀 한마디를 하시더군요.


“여기 계시는 신도 여러분들, 사실 저 같은 초청강사들은 다 허당입니다. 여러분에게 큰 의미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소중한 목사님, 여러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사님, 여러분들을 가장 끔찍이 생각하는 목사님,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목사님은 저 장경동 목사나 조용기 목사님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십니다.


여기서 뵈니 이 교회 신도들 다들 멋쟁이들이시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 제일 멋쟁이들, 제일 사랑스런 신도들은 제가 맡고 있는 교회 신도들입니다.


멀리 있는 멋진 사람들, 영화배우들, 스타들 보고 입 헤 벌리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 먹여 살리지 않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여러분들 남편, 여러분들 부인이 제일입니다. 다른 그 누구에 앞서 여러분들 식구가 최고입니다.”


돌아보니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하는 형제들은 사실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들, 제 성장과 쇄신을 위한 가장 좋은 동반자들, 어쩌면 하느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수호천사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자주 무시했습니다.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들에게 별로 고마움을 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바깥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사람으로 내비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한 말씀 할 때 제일 부담스런 대상, 안 하면 제일 좋은 대상이 바로 같이 살아가는 형제들입니다. 빤히 제 부족함, 제 나약함을 파악하고 있는 형제들, 제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내다보고 있는 형제들 앞에서 ‘그럴듯한 말씀’ ‘속보이는 말씀’ ‘말뿐인 말씀’은 즉시 발각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약점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서로 안에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의 자취, 그분 사랑의 손길을 미처 발견하지 못 하는가 봅니다.


여행 중에 아주 긴 여행이 있습니다. 형제들 안에 현존하시는, 또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여행입니다. 그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마을을 방문하면서 겪은 일화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예수님의 모습에 고향마을 사람들은 우선 깜짝 놀랍니다. 제자들을 거느린 예수님의 모습, 회당에서 가르치는 모습, 병자들을 치유시키고 기적을 행하는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고향마을 사람들은 완전히 새롭게 변신한 예수님의 금의환향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의혹에 찬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던 고향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저 사람은 하루 온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한마디 말도 없이 목공소에서 못질과 대패질만 하던 바로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뭔가 이상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고착화된 시각으로 인해,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자신의 신성을 거부한 고향 사람들의 아둔한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예수님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에 앞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몰라주고 자신을 끝까지 거부하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노보다는 서글픔이, 미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아무리 눈을 뜨게 하려고, 아무리 깨닫게 하려고 안간힘을 써도 끝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고향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상황을 종료시키고 빠져나가십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오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진지하게 찾아나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우리 형제들 가운데, 우리 삶 한 가운데 머물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을 감고 영혼의 눈을 뜨게 되는 순간, 창조 때부터 머물고 계셨던 하느님, 우리 인생 역사 시초부터 함께 자리하고 계셨던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굳게 닫혀있었던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이미 우리 안에 와계신 하느님 그분의 자취를 발견하는 은총의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