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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향으로 가셨는데'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8 조회수556 추천수5 반대(0) 신고
 <고향으로 가셨는데>(6, 1- 6)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지?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놀랐다.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예수님의 가르치신 내용이 무엇인지 루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말씀은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 간 이들에게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선포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라고 이사야서에 적혀 있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놀라지 않았다. 루가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 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라고 하였다.

 

 마치 복음을 읽고 난 후 사람들이 "무슨 강론을 하실 것인가?" 하고 신부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과 같다. 바로 그때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하여 "오늘 이 성서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폭탄과 같은 선언을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면서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사 중에는 대부분 조용하고 엄숙하다. 웬만해서는 그런 분위기가 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지?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하고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렸다는 것은 사람들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으며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자신들도 모르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웅성거렸던 것이다. 왜 그처럼 놀랐을까? 지금까지는 회당장이 어느 성서의 한 부분을 읽고 그 말씀을 설명해 주는 강론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성서 말씀을 해석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성서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선언해 버리시니 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이며 처음 보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늘 이 성서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은 해설이 아니라 선포된 내용이 오늘 실현되고 있음을 알리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회당장과 하혈하는 부인의 병을 고쳐 주심으로써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졌음을 보여 주셨고 회당장이 죽어 가는 어린 딸로, 그리고 하혈하는 부인은 하혈하는 병으로 묶여 있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심으로써 그들을 해방시켜 내보냈으며,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심으로써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보게 해주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기에 사용한 "놀라다"라는 동사는 예수님의 부모가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렸던 예수님을 찾으셨을 때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루가 2, 48)고 했을 때와 같은 동사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모들은 어린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척 근심걱정을 하며 사흘 동안 헤매어 찾고 있다가 어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 학자들과 당당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놀랐던 놀라움과 같은 놀라움이다. 이와 똑같은 놀람이 그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놀란다"는 것은 우리 안에 새로운 변화 즉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서도 이런 놀라움이 일어나야 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회당장이나 하혈하는 여인처럼 가난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세로 복음을 대한다면 누구나 이런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놀라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읽은 복음 말씀의 내용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씌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씌어졌고, 내 안에서 이루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읽는 말씀은 바로 오늘 나에게 이루워져야 할 말씀이다.

 

즉 묶여 있는 나를 해방시켜 주시고, 눈먼 나를 보게 해주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해주시고, 무거운 짐으로 억압받고 있는 나를 해방시켜주시고, 하혈하는 병을 낫게 해주시고, 죽은 나를 살려주시고,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읽을 때마다 놀래야 한다. 내가 먼저 놀라고 내 주위 사람들도 놀래야 한다. 내가 오늘 복음을 받아들인만큼 내 안에서 놀라운 일들이 이루워 질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놀라면서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6가지인데 이 중 셋은 긍정적인 것이고 셋은 부정적인 것이다.

 

 첫 번째,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라는 질문은 예수님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느님한테서 힘을 받아서 하는 것이냐, 아니면 사탄의 힘을 빌린 것이냐? 하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르 3, 22) 하고 떠든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능력의 출처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던진 질문이다.

 

사람들이 좀 더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우려 들었다면 이런 혼동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하혈하던 부인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경배드렸을 것이다. 

 

 두 번째,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지?"라는 질문은 가르침의 출처를 따지는 질문이다. 즉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지혜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지혜의 출처가 어디냐? 하는 것이다. 


지혜를 그리스어로 '소피아'라고 한다. 지혜와 지식은 차원이 다르다. 지식은 어떤 사물에 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어떤 사물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박사라고 한다. 즉 그 분야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단순히 지성과 이성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집회서에 보면 지혜에 대한 말씀이 있다. "모든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오며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다.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법칙이다. 지혜로우신 분은 오직 한 분, 두려우신 분이시며, 당신의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이시다. 그분은 지혜를 만들고 지켜보며 헤아리시는 주님으로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과 모든 인간에게 지혜를 너그러이 내리시고, 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풍부히 나누어 주신다."(집회 1, 1-10 참조)

 지혜는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실천하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 저 가정은 늘 화목하게 지낼까? 저 사람의 평화스런 모습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 사람의 기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 사람의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라고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이런 신앙인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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