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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정의 순간, 죽음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7 조회수992 추천수15 반대(0) 신고

                                     

 

 

                          절정의 순간, 죽음

   

 죽음의 병실을 기쁨의 장소로


 아직 갈 길이 창창했던 사제, 해야 할 일이 태산같았던 신부님, 오직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신부님,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을 안고 활짝 꽃피어나던 한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열정만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았던 이 젊은 신부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하느님도 무심하실 때가 있지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던 '잘 나가던' 그 신부님에게 너무도 충격적 사건-'불치병'-이 다가왔습니다.


   그냥 물러서기가 너무도 아쉬웠던 신부님은 기력을 되찾고자 이를 악물어보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사목과 치료를 병행하기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지요.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어진 신부님은 어쩔 수 없이 휴양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루하고도 험난한 투병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그 난데없는 십자가를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었던 신부님이 겪었던 마음의 갈등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심성 착한 신부님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그 열악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고통을 참아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첫째가는 사도직임을 깨닫게 됩니다. 신부님이 직접 몸으로 실천하였던 '고통의 사도직'은 유명했습니다. 병세가 위중해짐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통증은 뼈를 깎는 듯했습니다.


  고통의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신부님은 이를 꽉 깨물며 자신의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에 합치시키겠노라고 숱하게도 다짐했습니다. 아무리 통증이 극심해도 신부님은 한번도 "여기가 아파, 저기가 쑤셔"란 말 한마디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고통 그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병 문안 오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오랜 시간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외적인 사목을 더 이상 할 수 없게된 신부님은 자신의 남은 삶을 재편성하였습니다.


    영웅적 고통의 수용과 끊임없는 기도와 불굴의 인내로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아름답게 엮어갔습니다. 신부님은 고통과 절망의 장소인 죽음의 병실을 기쁨과 평화의 장소, 회개와 구원의 장소로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장엄한 낙화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죽음은 생의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을 시작하기 위해 묶은 껍질을 벗어버리는 과정입니다.


   꽃과 잎이 다시 뿌리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나무가 여름에 애를 쓴 이유는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떨어져 내릴 그 낙화의 순간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마지막 순간인 죽음 역시 인생곡선 안에서 가장 하한선을 긋는 절망의 순간이 아니라 절정의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여정을 끝내고 그리운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우리 삶의 여러 단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감미로운 순간이길 기원합니다.


   그 마지막 날은 오랜 세월 우리가 지니고 살아왔던 모든 상처와 좌절, 번민과 의혹이 구원의 기쁨으로 변화되는 순간이길 소망합니다.


  그 날은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날,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은총의 날이기에 너무 기뻐 뛰노는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날이 공포의 순간, 멸망의 순간이 아니라 은총의 순간, 희망의 순간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일, 각자 주어진 처지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꾸준히 선을 행하는 일, 각자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 매일 시련을 잘 견디어내는 일, 나란 존재의 부족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 매일 매순간을 꽃봉오리처럼 소중히 여기는 일, 우리가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눈물겹도록 정겹고 고마운 대상으로 인식하는 일, 갓 출가한 수행자처럼, 이제 막 봉헌생활을 시작한 수도회 지원자처럼 모든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조심하는 일.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양승국 신부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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