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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간 - 깨어 준비하라[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10 조회수360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성당 밖 구유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어느 성당에 유난히 별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미사 때마다 그 아이에게 다짐, 다짐... 또 다짐을 받아요.

‘제발 얌전히 미사하고 와라.’

미사 때 복사아이들이 제대 불을 딱 켜니까 그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해피버스데이 투 유~’

큰소리로 막 노래를 부르는 거야.

엄마가 얼마나 깜짝 놀랐겠어요.

그래서 엄마가 애를 막 끌고 나가는데 뒤에서

“엄마, 왜 남의 애를 데리고 나가는 거야?”

그때 그 노래 부른 게 누군지 알아요?

나야 나.

그리고 남의 집 애 끌고 나간 아줌마가 바로 우리 엄마,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이 됩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던 4,000년을 의미하는 대림초 4개가 제대에 꽂혀있죠?

그 사천년을 우리는 4주간으로 요약해서 4주간을 기다립니다.

 

사제가 입고 있는 제의도 보라색으로 패션이 확 바뀌었습니다.

대림초 옆에는 일 년 내내 늘 푸른 사철나무나 측백나무로 장식을 해둡니다.

사철나무는 죽지 않는 부활, 영원한 것을 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대림초입니다.

 

여러분들 집에도 대림초를 준비해서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촛불을 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이 첫 주니까 대림초 하나에 불이 켜있습니다.

대림 첫 주일인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에 오실 때,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 모습을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셨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하느님께서 세상을 내려다보니까 인간이 죄악으로 가득차서 못된 생각만 하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러나 의인, 노아만이 죄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다.

 

노아와 식솔들과 그리고 짐승 곤충 한 쌍씩을 방주에 넣게 한 다음

40일 동안 비를 내리니까 온 세상천지가 다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높은 산중에까지 배가 올라갔고, 150일 만에 물이 빠졌어요.

노아의 방주는 물의 심판 이었습니다.

 

‘아이구! 말세야 말세, 인간들 이러다가 벌 받지 벌 받어.’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입에서도 저절로 그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몰라요.

아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못 된 생각만 하고 살아갑니다.

 

 

수능시험에서 휴대폰을 이용해서 조직적인 범죄 행위로 시험을 보다가 적발이 되었지요?

적발이 안 된 아이들도 있을 거예요.

대한민국이 이렇게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 20년 안팎인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서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들었어요.

시어머니가 손주를 보다가 손주가 넘어져서 눈 밑을 두 바늘을 꿰맸대요.

저녁에 들어온 며느리에게 ‘얘 미안하다. 내가 애를 제대로 못 봐서....’

그 며느리가 아무 말 안하고 지 아이 찢어진 것을 보더니

다짜고짜 시어머니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치더래요.

 

 

시어머니가 아무 소리 못하고 자기 방에서 아들 들어오기만 기다렸데요.

저녁에 들어온 아들을 보고 엉엉 울면서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

아들이 한참 듣더니 “엄마가 맞을 짓을 했구만!”

실화예요.

 

 

그 할머니가 어떻게 한줄 아십니까?

마침 그 집이 할머니 명의로 되어있어서 몰래 나가서 복덕방에

집을 팔아넘기고 시골로 내려갔데요.

‘니들 길거리로 나앉아 봐라!’

 

 

그 꽃동네 있는 노인네들 치매환자들, 삼분의 일 정도는 다 갖다 버린 사람이야.

내가 옛날에 꽃동네에 있을 때 보면 택시기사 돈 몇 푼 줘서

치매 걸린 노인들... 꽃동네 앞에 갖다 버려요.

 

겨울이면 봉사자들이 후레쉬 들고 그 아래를 다 뒤져봐요.

갖다버릴 때 그냥 갖다버리는 게 아니에요.

소리지를까봐 입에다 파스 붙이고 양손 다 묶어가지고 택시기사가

‘휙~’ 하고 내던지고 가요.

겨울에는 얼어 죽는단 말이예요.

풀 속에서 끙끙 신음소리가 나서 가보면 노인네가 파스붙이고 손 묶여가지고 있어요.

 

 

두 번째,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셨던 때가 창세기 11장 바베탑이야기

 

성서를 보면 ‘하늘에 닿게 탑을 세워서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려서...’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고

‘이놈들이 이게 그냥 내버려뒀다간 보통일을 저지를 놈들이 아니겠구나.’

해서 탑을 못 짓게 말을 헷갈리게 했어요.

 

그전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말과 같은 낱말을 썼다고 나와 있죠?

그런데 도시 한가운데 탑을 하늘까지 세워서 내 이름 우리들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겠다고 하는 꼴을 보면서 말을 헷갈리게 했어요.

언어의 심판이 있었던 겁니다.

 

 

교만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교만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개집 하나 못 짓습니다.

말이 통해야 뭐 나무때기를 가져오라는 것인지 못을 가져오라는 건줄 알지요.

 

 

언어의 혼란은 교만을 나타냅니다.

언어의 혼란은 분열을 가지고 옵니다.

말이 안 통하니까 당연히 같은 말을 하는 놈들끼리 모일 수밖에 없죠.

생각이 비슷한 인간들 밖에는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분열이라고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심판입니다.

 

 

바로 인간의 교만 때문에 언어의 심판이 있었고

이것을 하나로 일치시켜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서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자

제자들은 이상한 언어와 영가, 은사를 받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사랑의 언어를 퍼뜨립니다.

 

예수님이 주신, 성령이 주신, 심령언어를 하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교만 때문에 갈라졌던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회개로 한 언어로 되는 것이 바로 심령언어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을 가득히 받은 제자들은 이상한 언어와 영가를 불렀다.

 

세례 받은 여러분들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심령기도를 하셔야만 됩니다.

 

내 안에 성령이 살아 계시다면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저절로 심령기도가 나옵니다.

교만으로 갈라진 인간의 언어는 하느님의 언어,심령의 언어, 영가로서 하나가 됩니다.

 

 

세 번째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는 性의 문란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소돔과 고모라만 못한가?

소돔과 고모라는 우리 한국의 성의 타락에 비하면 그건 타락도 아닙니다.

 

 

성이 개방되어 있는 유럽이라든지 미주로 가 보아도 주택가는 확실히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술집이라든지 위락시설은 장소가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주택가 안에도 술집이 다 있지요.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고... 길거리마다 러브호텔이야.

들어가는 입구는 차번호 안보이게 비닐로 왜 길게 가려?

대낮에 거기 들어가 있는 인간들 뻔한거지 뭐~

그렇게 장사가 잘 되니까 여관방이 없대요.

 

 

아이들이 망가지는 것은 어른들 책임입니다.

아이들 탓할게 없어요.

컴퓨터, TV.... 얼마나 아이들의 영적순결을 짓밟습니까?

 

 

단란주점 들어가서 술만 먹습니까?

단란주점 가서 단란하게 있다가 나옵니까?

도우미들이 있잖아요.

얼핏 보면 아가씨 같기도 하고...기정이 깨어집니다.

음란 마귀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위에서 이야기하는 세 가지의 죄악을 다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가끔 맛보기로 정신 차리게끔 옐로우 카드를 보이십니다.

물의 심판을 할 때도 있고, 불의 심판을 할 때도 있고 언어의 심판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들에게 주는 이 고통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정말 큰 심판이 닥칠 때 얼마나 무서울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날이 올 때는 밭에서 나가서 둘이 일을 하다가

하나는 내버려두고 하나는 데려갈 것이다.

 

맷돌질 둘이 하다가 그 날이 오면 하나는 내버려두고 하나는 끌고 올라갈 것이다.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대림절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영적 자유 세 가지를 누려야 하는데

첫 번째, 상처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상처라고 하는 것은 내 과거 속에 남아 있는 상처도 있고

무의식 속에 있는 어둠의 상처도 분명히 내 삶을 가로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 중에는 태아 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환경

술 마시고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던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상처

생각하기 싫은 상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지금도 남아 있을 거예요.

 

빨리 흐르는 물에 씻으십시오.

내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 인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명단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여러분들이

미사를 할 때마다 특히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내 마음에 가시로 박혀 있는 아무개 아무개를 위해서 이 성체를 영하겠습니다. 치유시켜주십시오!’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치유가 됩니다.

 

 

두 번째,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

오래 묵은 죄악은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늘 거짓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모고해와 모령성체를 하는 사람의 영혼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들의 죄악을

정직하고 진실 되게 고백하지 못하게 합니다.

늘 죄의식을 가지고 살게 하면서 결국에는 해결을 못하게끔 가로막습니다.

 

 

정신의학자들이 말하기를 심장병 위장병 우울증, 암과 같은 병이 걸리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과거에 깊은 죄의식을 청산하지 못하고

감추어둠으로써 육신의 병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림절 동안에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판공성사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에 포인트를 맞추어야 하는가!

‘내가 이제껏 신앙생활 하면서 모고해 한 적이 없었던가!’

 

 

모고해는 거짓 고해입니다.

거짓 고해를 하고 성체를 영하면 성체모독입니다.

 

성모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모고해는 지옥으로 바로 떨어지는 죄라고 했습니다.

 

 

내가 신자생활 하면서 일부러 부끄러움 때문에, 창피함 때문에...일부러 빠뜨린 죄는 없었던가!

고백을 했더라도 두리뭉실하게 넘어갔기 때문에 신부님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런 쪽에 포인트를 두고 총고해를 하십시오.

 

 

세 번째는 불평불만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다른 말로 입으로부터, 혀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불평불만이라고 하는 것은 혓바닥을 통해서 주변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아무리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도 감사할 것이 몇 가지는 있을 것입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없어서 성당에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당 인터넷 게시판에 보면 뇌성마비 환자들이 가끔 입에다가

볼펜을 물고 자판을 두드려서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가락이 있어야 묵주기도를 하고 발가락이 있어야 걸어다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적어도 그 사람들보다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절뚝거리더라도 성당에는 오실 수 있는 겁니다.

 

불평불만이 있는 곳에는 사탄의 유혹이 있을 뿐입니다.

 

 

감사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첫 번째 단추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하신 분들은 무조건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데요?”

왜 없습니까?

찾아보십시오.

아침에 눈뜨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초대해 주셔서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까?

 

감사로부터 영적 자유를 느끼는 사람은 주변이 아무리 변해도 능히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내 안에 주님께서 계신다면...  박제된 예수님, 성화 속에만 계신 예수님이 아니라

그 예수님이 살아서 걸어서 내 마음에 들어오신다면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할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인간이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고

똑같은 말로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대림절 시작하면서 세 가지의 자유를 묵상합시다.

첫 번째는 상처로부터의 자유

두 번째로는 죄의식으로부터의 자유

세 번째로는 불평불만으로의 자유

 

 

대림절은 침묵하는 시기입니다.

침묵을 통해서 내적으로,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입에 쟈크를 채우십시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소리를 제대로 못 듣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 대림절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대림절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제의 입술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들어가셔서

치유의 은혜를 전해주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잠시 후에 당신의 몸을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들어오십니다.

주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짐을 믿고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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