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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6 > 얼척없는 인생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6 조회수991 추천수12 반대(0) 신고

   

 

 

                          얼척없는 인생



   금년 사제 피정 때의 일이다.

   피정 전날 본당 회장님으로부터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피정비를 받았는데 겉봉에 ‘15만 원’ 이라 적혀 있었고 꺼내 세어 보니 실제로 그 액수였다. 이건 생각보다 좀 많았다.


   피정비는 으레 10만 원으로 되어 있었다. 항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적어도 10년 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5만 원을 더 받고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사제생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본당이 세 번짼데 어느 해 한번도 실수해서라도 누가 돈 만원 더 준 적이 없었다. ‘본당이 시골이래도 인사성은 좋구나.’ 혼잣말을 해가면서 따로 5만 원을 챙기는데 마음이 흐뭇했다.


   피정은 안양에 있는 ‘라자로 마을’에서 있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의왕시로 바뀌었지만 나환우들 마을에 훌륭한 피정의 집이 있어서 전국에서 찾아드는 곳이다.


   첫날 저녁기도 후에 피정비 15만 원을 내라는 교구청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다. ‘15만 원이라니!’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 신부님들은 당연한 듯이 각각 돈을 내고 계셨는데 공문을 확인해 보니 정말 그랬다.


   생각하니 참 큰일이었다. 난 여적 10만 원인 줄 알고 봉투에다 그렇게 준비했는데, 용돈과 합쳐서 피정비를 채우고 나니 단돈 200원이 남게 되었다. 좀 전에 800원짜리 1단 묵주 하나 사고 거슬러 받은 것이었다.


   피정에 돈 쓸 일은 없었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또 태워 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막상 호주머니가 텅 비고 나니 갑자기 불안해져서 피정이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동창 신부에게 좀 꾸어 볼 생각도 했으나 그로 인해 무슨 말을 주워들을지 몰라 그냥 몸조심하는 것이 편할 듯했다.


   강론시간과 묵상시간에는 내내 돈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고, 누가 혹시 돈 좀 빌려 달라는 신부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도 했다. ‘쪼다’는 어딜 가도 ‘쪼다’라더니, 이건 본당에서도 돈 걱정이더니 피정까지 와서도 이 모양이니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이튿날 미사는 환우들 성당에서 드렸다. 원장 신부님이 일본에 가셨으니 날 보고 대신 미사드려 달라는 교구청 신부님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환우들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7년 전에 그곳에서 두달간 휴양을 했기 때문에 소식 없이 긴 세월이 지났어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미사 후에는 성사를 달라시는 할머니들의 부탁이 있어 잠시 고백실에 들어섰더니 한 분씩 들어와서 성사는 안 보고 한다는 말이 “신부님 얼굴이 많이 야위었다”면서 봉투들을 주는데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꽤 많은 돈을 받았으니 참 묘한 일이었다.


  “하느님, 저 같은 놈을 전라도 말로 ‘얼척없다’고 합니다. 아시죠?”


♣'얼척'은 '어처구니'의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임. 전라도 사람들 다 '얼척 없다'라고함.

 

                                                 http://my.catholic.or.kr/vegabond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Vanessa Mae / 바네사 메이 - Contrada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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