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20) 중국음식점에서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6 조회수832 추천수10 반대(0) 신고

 

 

가끔 들르는 중국음식점이 있다.

자장면이 생각나면 차를 타고 가는데 같은 구에 있어 버스로 여덟 아홉 정거장만

지나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이 자장면이란 음식이 참 묘한 것이어서 한동안 안먹으면 생각이 난다.

일찌기 중학생 때, 방과 후 장터거리에서 만난 어머니가 사주셨던 자장면을 난생   

처음 맛있게 먹어보고 난 후, 자장면과의 인연은 참 오래 이어져 내려왔다.

 

외식 중에서 가장 많이 먹어본 음식이라서 그럴까.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값싸고 맛도 좋은 음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 중국음식점에 갈 때마다 주인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오십대 중반쯤은 된듯한데, 좀 우락부락한 생김새에  무표정한 얼굴로 손님이 들어가면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가 고작 한마디 한다는 것이 "몇분이세요?"다.

주문을 받을 때도 얼굴 표정이 뻣뻣하기가 장작깨비 같고, 어찌 보면 꼭 골 난 사람 표정에

가깝다. 한 번도 웃음은커녕 가벼운 미소조차 띈 적이 없다.

 

저 사람은  전직이 뭐였을까?, 분명 높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아랫사람만 부린 사람일거야,

한번도 남에게 고개를 숙인 일이 없는 사람일거야.......

그렇게 온갖 추측을 하다가 저래가지고 무슨 장사를 한다고, 저렇게 친절을 모르고  

서비스 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장사를 하지? 하면서 급기야는 성토하는 마음

으로까지 된다.

 

처음에는 비싼 요리는 먹지않고 가장 값이 싼 자장면만 시켜서 그러나 싶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비싼 요리를 시켜 먹는 손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주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수 개월 채 개의치 않고 갔다.

내돈 내고 음식을 사먹으면서  주인에게 신경을 쓰고 기분을 조절해야 한다는 게 씁쓸하기

는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근처에선 그집만큼 맛있는 집을 찾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깨끗한 실내에 집기에 탁자는 반들반들 윤이 나고, 음식 담는 그릇 하나하나가

고급스런데다 보통 중국음식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급 레스토랑 수준이다.

거기에다 동네 중국음식점보다 짜장면 값이 불과 천원 더 할 뿐인데 그 맛은 완전히 다르다.

 

동네 자장면은 시꺼먼 색이라서 우선 빛깔도 보기 싫고 먹고나면 늘 느끼한 뒷맛이 있는데,

이 집 짜장은 빛깔이 부드럽고 보기좋은 갈색에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뒷맛도 깔끔하다.

 

내가 서울대 병원 안에 있는 차이나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자장면을 먹어본 뒤에 동네   

자장면은 사먹기가 싫어졌다.

그 깔끔한 맛에 끌려 병원에 검사하러 갈 때마다 꼭 사먹고 왔는데 그렇다고

그 먼데까지 일부러 가기는 좀 그렇다.

버스타고 전철 타고 다시 마을버스 타고 가야하는 그 병원을 자장면 한그릇 사먹자고 

가기는 번거롭고 힘이 든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집을 발굴(?)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발굴한 집인데 사장이 좀 눈에 거슬린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ㅎㅎㅎ

요즘은 살기가 여유로워져서 그런지 먼곳까지 맛을 찾아가는 추세인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느날 갔더니 사장은 없고 종업원이 주문도 받고 써빙도 하고 카운터도 보는데 '아이고!  

오늘은 그 눈에 힘주고 있는 사장 얼굴 안봐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또 그집에 갔는데 그날 따라 사장 얼굴이 다른 날과 달라보였다.

빳빳이 힘을 주고 있던 눈과 눈썹이 많이 풀어져 있었다.

골 난 것 같은 표정이 없어지고 주문을 받는 입매도 살짝 위로 치켜져 있어  부드럽게 느껴졌다.

 

이제 여러번 봤다 이거지!

낯이 익었다 이거지!

남편과 함께 가족 모두가 함께 또는 아들 딸과 함께 딸과 함께 해서 간 것이 대충 꼽아보니

예닐곱번은 간 것 같았다.

 

음식을 먹고 나오면서 나도 기분이 좋아 처음으로 "잘먹었습니다" 했더니

"네에, 안녕히 가세요." 한다.

그날은 그래서 기분도 좋고 입맛에 꼭 맞는 음식맛에도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그때 불현듯 생각한 것인데, 왜 꼭 장사하는 사람만이 손님에게 미소를 짓고

친절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손님으로 간 사람이 먼저 말을 걸고 웃으며 인사하면 안되는가? 였다.

 

영업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손님을 맞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웃으려면 턱관절이 아프기도

할 것이다. 나같은 전업주부도 때로는 밥하기 싫고 청소하기 싫은 적이 있는데, 그들

이라고 맨날 웃으라는 법이 있는가.

 

나도 가끔은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며칠씩 청소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둘 때가 있는데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왜 그럴날이 없겠는가.

 

다음에 갈 때는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사장 얼굴이 활짝 풀어져 "어서 오세요. 날이 많이 덥지요? 이쪽 시원한데로 앉으세요."

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정관념을 깨뜨리자.

어쩌다 가끔 들르는 내가 먼저 웃으며 친절을 베풀면 되지 않는가.

 

수많은 손님 맞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꼭 먼저 친절을 받고 인사를 받으려는 생각을 버리자.

그사람들이 거저 돈을 받는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그 값을 받는 것일진대,

나는 그 음식을 먹고 값을 주는 것일진대, 서로가 주고받는 것일진대,

왜 친절은 꼭 주인은 베풀어야 하고, 손님은  받아야만 하는가.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너무 그런 걸 의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남이 변화하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마음을 바꾸니 즐거운 것을.......

 

하느님께도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맨날 맨날 달라고만  하지 말고,

"이것도 주님께 드릴께요, 저것도 주님께 드릴께요." 하면 주님께서 우리 말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는 불평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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