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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26일 야곱의 우물-마르1,12-15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6 조회수360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12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오늘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 Lectio )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성령이 내려오시고, 하느님의 아들이란 당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으신 전前 문맥 ( 마르 1,911 )에 이어 오늘 말씀은 ‘광야의 유혹과 복음 선포’ 라는 두 가지 주제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본디 사명은 갈등과 유혹 그리고 논쟁을 불러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광야로 내보내 지십니다.( 12절 ) 광야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삭막함과 두려움, 삶의 조건이 결핍된 장소로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사탄과 적대세력이 주둔하는, 곧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원초적인 혼돈의 장소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 13ㄱ절 ) 40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 40년 ( 민수 32,13; 신명 8,2 )과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지낸 40일 ( 탈출 34,28 ) 그리고 엘리야가 호렙산을 향해 걸었던 40일 ( 1열왕 19,1 – 8 )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런 상황들은 40이란 상징적인 숫자와 함께 하느님의 부재중에 초래되는 위기를 암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충실성은 시험과 고통 속에서 실현됩니다.( 히브 5,8 참조 )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은 40일이 지난 후에 유혹을 받지만 ( 마태 4,2 ) 마르코복음에서는 광야 40일이 유혹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스어로 ‘유혹과 시련’ 은 한 단어입니다. 마태오와 루카는 세 가지 유혹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마르코는 40일에 걸쳐 행해진 ‘시련’ 을 강조합니다. 비록 광야가 시련의 장소일지라도 “들짐승과 함께 …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르 1,13ㄴ절 )는 것은 메시아의 통치 아래 이루어질 조화로운 세상과, 예수님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시련을 이겨낸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시편 91,11 – 13; 이사 11,6 – 8; 65,25 참조 ) 하지만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에서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하는데 실패한 후 떠나가지만 ( 마태 4,11; 루카 4,13 ) 마르코복음에서 사탄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활 전반에 걸쳐 계속 유혹합니다.( 마르 8,11; 10,2; 12,15 참조 ) 이처럼 광야는 어느 일정 기간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생애에 겪었던 모든 갈등과 유혹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장소인 만큼, 우리가 서야 할 자리이며 우리의 소명을 이루어가야 할 자리일 것입니다.


갈릴래아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마르코복음 1장 14 – 15절은 전반부에 이어지는 전도여행의 지리적 여정을 준비하는 한편, 예수님의 복음 선포 전체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사도 바오로가 처음 사용했던 용어 ‘복음’ 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내용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깊이 개입하셨기에 ‘하느님의 복음’ 이라 했습니다.( 1테살 2,2.8 – 9; 2코린 11,7; 로마 1,1 ) 마르코는 이 용어를 빌려와 예수님께서 전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을 ‘하느님의 복음’ 이라고 합니다.( 이사 52,7; 61,1 )


하느님의 복음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는 선포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는 요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르 1,15 ) ‘때가 찼다.’ 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온 구원의 새롭고 결정적인 시대가 예수님의 출현과 더불어 동터왔다는 것입니다.( 2,21 – 22 참조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힌 뒤에” 시작한 갈릴래아 선교는 연대기적인 의미보다 예수님과 요한의 활약을 구분 짓는 신학적 의미로서 예수님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 14ㄱ절 )


하느님 나라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 1,1 )께서 그분의 뜻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열어 가실 것입니다. 이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의 자세가 ‘회개’ 와 ‘믿음’ 입니다. 회개가 자기중심에서 하느님중심으로 돌아서는 삶의 전환이라면, 믿음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는 기쁜 소식을 수락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해도 세상의 것만 추구하는 사람한테 하느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후 後 문맥으로 소명사화가 이어지는데 ( 1,16 – 20) , 이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15ㄷ절 ) 라는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소리쳐 깨우지만, 일어서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지요 ?

묵상  ( Meditatio )
광야와 회개 그리고 복음이란 단어가 마음을 꽉 메워옵니다. 풍요가 넘쳐 부족함과 고요함을 찾을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자리, 어느 자락이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광야일까요 ? ‘주 ! 찬미’ 를 외치면서도 이웃의 빈곤을 외면하고, 고통과 시련이 두려워 진실을 피해 가며, 세상의 가치에 순명하는 그 자리가 오늘날 우리의 죄는 아닐는지요 ? 그 무엇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회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외치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우리네 가슴에 반향되지 않을까요 ?


기도  ( Oratio )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시편 1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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