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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또 올랑가 안 올랑가?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06 조회수876 추천수8 반대(0) 신고

                                        

                                        

 

 

                   또 올랑가 안 올랑가?


   전임지에서 마지막으로 떠나 올때의 일이다.

   성당 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빵학년이 갑자기 달려와서는 “신부님, 가능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또 올랑가 안 올랑가?” 하면서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갑자기 온 몸이 저려 오는 듯해서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본래 어린이들을 좋아한다. 과거 교직에 있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특히 빵학년을 좋아한다. 빵학년이란 미취학 어린이들에게 내가 즐겨 쓰는 애칭인데 그들은 거의가 나와 말을 놓고 지내곤 한다. 어른들은 그렇게 한다고 꼬마들에게 눈흘김도 자주 했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편했다.


   한번은 그네를 타고 있는 꼬마친구에게, 성당에는 그네랑 미끄럼틀이 있으니 신부님과 함께 사는 것이 어쩌겠느냐고 살살 꾀었더니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끈질기게 매달리자, 옆에 있던 여자 빵학년이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신부님도 장가 가지 그래요?”  하면서 한마디 참견하는 것이었다.


   내 생애에 어리석은 사건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나는 왜 그렇게 더 작아지고 바보스러워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도시 본당에 온 지 이제 석 달.

   나는 아직도 이곳 호남동 빵학년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도시의 모든 분위기라는 것이 그렇기는 하지만 생각 같아서는  마당의 성모상을 하나쯤 헐고 그 자리에 놀이터를 만들었으면 좋으련만, 만일에 그랬다가는 마귀 신부 왔다고 생난리가 날판이니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어지럽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성당 안팍으로 몇 개씩이나 되는 당신의 성모상인가 아니면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인가?


   가끔 성당에 있는 유치원 놀이터의 험악스런 울타리를 볼 때마다 어른들은 왜들 그렇게 너그럽지 못한지, 그래 유치원생이 아닌 다른 꼬마들이 좀 놀기라도 하면 그게 그렇게 아깝고 싫다는 것인지 공연히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교회가 무엇인가? 어린이는 나라의 새싹이요 교회의 장차 일꾼이라 하는데, 말은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설 땅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 같아서는 빵학년들 데리고 데모라도 하고 싶지만 최루탄 맞을까 두려워 양심선언만으로 그친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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